오피니언

[동십자각/9월 16일] 대기업 맷집 키우는 SSM 규제법

"재래시장 옆에 기업형슈퍼마켓(SSM)이 발도 못 붙이게 하는 법을 통과시켜도 사실 영업에 큰 지장은 없어요." 한 대형유통업체의 SSM전략기획 담당자 반응은 예상외로 무덤덤했다. 시장 근처에 SSM 직영점 개점을 막는 유통산업발전법이 대기업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고 기자가 작정하고 던진 우문(愚問)에 질타하는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같은 동네라면 상추 한 묶음을 사더라도 가격이 훨씬 싼 재래시장을 찾지 SSM에서 비싸게 사지 않거든요." 이내 담당자는 시장 주변에 적자를 보는 자기회사 SSM 여러곳을 친절하게 열거해줬다. 그렇지 않아도 장사가 안 돼 앞으로는 시장 주변에 새 점포를 내지 않을 판인데 법이 통과된들 무슨 대수겠냐는 것이다. 규제대상이 타격을 입지 않는다면 규제법은 실효성에 의문이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유통법과 함께 SSM 가맹점 규제를 골자로 한 이른바 상생협력촉진법은 어떨까. 개점비용을 대기업이 사실상 거의 다 부담해 실제는 직영점인데 '무늬만 가맹점'이 늘고 있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영세상인들의 골목상권을 보호해줄 보루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국회통과 촉구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 또한 미덥지 못한 구석이 있다. 대기업들 저마다 점주의 부담을 좀더 늘리는 다양한 가맹방식을 갖춰놓고 법이 시행되더라도 가맹영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 있기 때문이다. 약이 효과를 내지 못하면 더 독한 약을 처방한다. 하지만 처방하기에 앞서 점점 강력해지는 내성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도 고려해봐야 한다. 기업은 생존의 문제 앞에서 죽기 살기로 싸우는 판인데 높이가 한눈으로도 가늠이 되는 장벽 한두개 만들어놓은들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을까. 법 시행 이후에도 대기업의 SSM 출점 기세가 줄지 않는다면 정치권과 당국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실제 약 효과는 없고 심리적 효과만 노리는 '위약(僞藥)' 처방에만 몰두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게 분명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허약한 중소상인의 체력을 보강하는 일이다. 현재 정부의 지원으로 무럭무럭 크고 있는 나들가게처럼 대기업과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는 동네슈퍼를 더 많이 키우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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