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쿠어스사가 5월 공개 매각 예정인 진로쿠어스맥주 인수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진로 역시 진로쿠어스의 일정 지분을 계속 보유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렇게 될 경우 진로쿠어스는 주인이 경영을 잘못해 부도를 냈으면서도 여전히 같은 주인이 경영을 맡게 되는 셈이어서 기업의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8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쿠어스사의 피터 쿠어스부회장은 이달말 서울을 방문, 진로쿠어스의 매각작업을 총괄하는 구조조정사무국과 체이스증권사 관계자들을 만나 인수구상을 밝힐 계획이다. 이와 관련 쿠어스의 국내 홍보를 맡고 있는 메리트측은 『돈은 적게 투자하더라도 진로쿠어스에 대한 경영노하우등을 잘 설명하면 정부와 채권단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로 역시 지분을 계속 보유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진로쿠어스의 배종규 회장은 지난 2월 공개 매각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진로쿠어스의 유통은 어차피 ㈜진로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지분 보유는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진로쿠어스는 지난 97년 모기업인 ㈜진로가 어려워지면서 부도를 내고 현재 법정관리중이다. 당시 주인은 ㈜진로와 쿠어스사로 각각 67%, 3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진로쿠어스가 다시 쿠어스에 팔린다면 이는 옛 주인들이 지분비율만 바뀐 채 그대로 눌러앉는 셈이 된다.
쿠어스사는 과거 진로쿠어스가 어려워지자 풋옵션(전환사채 발행 후 일정 기간이 지나 투자자가 주식전환 대신 현금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약정)을 행사해 자기 지분을 모두 진로에 팔았다. 경영의 한 축을 담당한 회사가 경영부실에 대한 책임을 면한 뒤 이제는 경영노하우가 있다며 해당 기업을 인수하겠다는 것이다.
진로는 현재 화의상태로 각종 혜택을 받고 있다. 남에게 진 빚은 유예를 받고 있으며 거액의 주세 역시 내지 않고 있다. 화의의 전제조건이었던 자구노력은 회사직원을 자른 것 말고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진로는 엄청난 자금공세를 벌이며 영업을 하고 있다. 「참眞이슬露」소주의 지방 공략을 위해 도매상에 외상으로 물건을 주고 있으며 대형 식당에는 급전 융통을 미끼로 판매를 늘리고 있다. 올초에는 10억원 규모의 경품제공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진로는 지난해(9월 결산) 27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엄청난 적자를 보면서도 당장 호주머니에 있는 남의 돈은 물쓰듯 쓰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경쟁업체들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남들은 IMF에 살아남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는데 이미 쓰러진 회사는 거리낌 없이 돈을 펑펑 쓰고 있다는 것이다.
진로쿠어스의 부도는 전적으로 두 회사의 책임이다. 하지만 한 회사는 지분관계가 없으니 책임이 없다며 오히려 경영노하우를 주장하고 있다. 한 회사는 남의 돈은 갚지도 않으면서 자기 재산은 계속 유지하려 한다.
업계 관계자는 『진로쿠어스의 주인이 바뀌지 않는다면 한보철강을 정태수 회장에게 다시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되묻는다. /한기석 기자 HANKS @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