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아죽이기/신상석 국차장겸 정경부장(데스크칼럼)

기아죽이기가 본격 진행되고 있다. 그것도 「기아살리기」로 그럴 듯하게 포장돼서다. 정부와 채권은행이 주역이고, 최고 경영진과 관련 자동차업계 및 노조가 본의든 아니든 동조하고 있다.정부는 5일 기아의 제3자인수 추진을 부인했지만 아무래도 오히려 정부개입에 의한 제3자인수 수순의 시작으로 보인다. 정부는 기아의 자력회생보다는 제3자인수가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기아의 회생보다는 제3자인수를 통해 기아사태 해결과 자동차업계 구조조정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채권은행단도 심정적으로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제3자인수는 거액의 여신이 부실화되거나 장기간 회수가 어려운 상태로 빠져드는 길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기간산업이 어찌되든 말든 채권 확보에 급급한 결과다. 이 때문인지 기아가 받아들일 수 없는 현 경영진 퇴진을 고집스럽게 요구하고 있다. 최고경영진도 이같은 기아죽이기에 결과적으로 한몫 하고 있다. 경영권포기각서는 그렇다치고도 자구실행을 미루고 있어 정부나 채권은행단에 기아죽이기의 명분을 주고 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기아회생의 길은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선결이다. 자구노력은 아무리 강도가 높아도 지나치지 않다. 70년대말 미국의 크라이슬러사는 33명의 부사장과 8천5백여명의 근로자를 줄이는등의 감량경영으로 국민적 공감을 사고 정부와 은행의 지원을 얻어내 기사회생의 전기를 마련했다. 현 경영진은 자구실천을 늦춤으로써 기아사태의 해결을 세간에 나도는 시나리오대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터주고 있다. 현경영진은 자구노력보다는 삼성의 인수에 반대하는 관련자동차업계의 지원에 미련을 두고 있는 듯이 보인다. 관련업계의 속셈은 물론 처음부터 다르다. 기아를 돕고 있는 행동이 삼성인수 차단 전략이지, 기아살리기가 아니다. 이들은 기아를 인수할 수 있으면 최상이고 못해도 최소한 삼성행은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을 깔고 있다. 이 사태를 오래 끌어 기아가 고사하게 되면 강력한 라이벌업체하나 없어져 나쁠게 없다. 손해볼 일 없는 게임을 하고 있다. 이 회사들이 좋은 차를 만들어 자신들의 회사와 경쟁에서 이기도록 기아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이유가 없다. 기껏해야 부도나 막아 현상이나 유지하도록 할게 뻔하다. 잘못하면 「백기사」가 아니라 「트로이의 목마」가 된다. 노조는 이번 사태에 큰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인원감축에 동의하지 않아 기아죽이기에 또 다른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기아가 잘 나갈 때 가장 큰 몫을 챙겼다는 노조가 이번에는 자기 몫을 내놓아야 한다. 자신들도 살을 도려내지 않으면 회사를 살릴 수 없다. 이처럼 각 기아관련 당사자들이 추진하고 있는 해법은 기아의 간판을 내리거나 고사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 기아 살리기는 기아가 국민기업의 본질을 유지하는 것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주식분산, 전문업종을 유지하면서 과거의활기를 되찾아야만 진정으로 기아가 사는 길이다. 기아가 현재대로 가면 부도는 면할 지 몰라도 기아의 실체는 변하고 만다. 재벌의 계열로 편입되거나 재벌그룹계열의 위성회사로 전락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는 기아의 이름만 살지 기아의 실체는 죽고 만다. 자동차회사는 다른 제조업과는 달라 연간 5천억∼1조원의 자금을 연구개발과 시설투자에 투입, 최소한 1개이상의 신차를 개발해야 한다. 현재 상태로는 신차개발은 커녕 부도 막기에도 급급하다. 부도가 나지 않더라도 1∼2년안에 자연스럽게 고사 될 수밖에 없다. 기아를 살려야 한다. 지금까지 미국의 크라이슬러와 일본의 마쓰다자동차, 이탈리아의 알리탈리아항공사 등 국가기간산업이 결정적인 경영위기를 벗어나 정상화를 이룩한 경우가 많다. 물론 회사측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과 정부와 주거래은행의 시의적절한 지원에 힘을 입었다. 기아가 죽으면 우리기업의 선진화는 몇십년 후퇴한다. 정부시책에 가장 순응하고 국민정서에 꼭 들어맞는 기업이 죽게 되면 우리경제는 재벌 천국이 되고 만다.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책임을 묻되 국민기업은 제모습으로 살려야 한다.

관련기사



신상석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