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APEC서 본 한국경제/배순훈 대우전자 회장(특별기고)

한국의 외환위기는 APEC(아·태경제협력체)에 참석한 모두에게 화제거리였다. 우리 경제개혁이 늦어졌다는 점이 주된 화제로 등장했다. 이런 문제는 언제나 몇가지 나쁜 요소들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파국을 만든다.○참석자에 화제거리 시너지 효과인가, 머피의 법칙인가. 세계화를 하다보니 세계의 문제가 바로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IMF(국제통화기금)에서 재빠르게 도움을 받은 태국·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더 큰소리로 떠든다. 경제기초는 튼튼한데 환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외환의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서 경제력을 제고해 수출을 더하려고 하니 APEC 가입국가들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우리는 그 사람들보다 얼굴이 하얘서 그런지, 얼굴이 뜨거워서인지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메워야 할 대미무역수지 적자가 1백억달러가 넘는데도 미국의 학자들은 동남아 국가들보다 한국이 경쟁력을 제고하여 미국에 수출을 너무 많이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IMF차관은 흑자도산한 우리에게 구제금융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교육받은 열심히 일하는 인간자본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공장시설이 있고 생산기술이 있기 때문에 아직 우리의 경제구조는 튼튼하다고 할 수 있다. ○노동법 조속개정을 문제는 재정적인 면에서 기업운영이 잘못됐고 국가경영의 실패에 있다. 빨리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을 투자회수가 느린 반도체·자동차·철강·조선에 투자했다. 미래 유망업종이라면 자기 자금으로 투자했어야 했다. 은행을 비롯한 여신기관은 시장경기가 일시적으로 악화하더라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투자를 중단하든가 연기해야 한다. 왜 우리 대기업들은 이런 불합리한 경영을 신문에 크게 광고하는가. 세계금융시장의 자본유통규모는 현물유통의 20배나 된다. 자본유통은 모든 첨단전자기술이 동원되고 막대한 봉급을 받는 최고의 두뇌들이 참가하여 촌음을 다퉈가며 하루 24시간 쉴 새없이 진행되고 있다. 정부 관리가 현황을 파악해 도저히 규제할 수도 없다.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수상이 아무리 자본거래를 규제하자고 해도 수단이 없다. 그냥 자유화를 내세워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애꿎게 세계시장 경쟁에는 끼지도 못하는 내국 금융기관의 발만 묶는다. ○「국가경영인」 뽑아야 개방하면 다 망하는 데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는 주장도 맞지 않는다. 어차피 못하는 일은 책임 소재라도 분명히 해야 한다. 종합금융회사가 망한다고 나라경제가 실패하는 것이 아니고 설혹 실패한다 하더라도 비용은 들지만 대책을 세워 해결하면 된다. 재무구조 조정은 부도가 나기전에 조속하고 단호하게 해야 자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늦었지만 IMF가 요구하기 전에 자구노력을 해야 우리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 경제의 기초는 산업경쟁력이다. 경쟁력은 세계시장에서 게임을 해보아야 알 수 있다. 월드컵 축구는 감독의 전략에 따라 선수들이 자율적으로 뛸 때 이길 수 있다. 일본축구는 좋은 선생에게 배워 공부 잘하는 선수들이 출전했고 우리 축구는 공부는 잘하지 못했더라도 현황에 잘 적응하고 악착같은 투지를 갖고 싸웠다. 우리 선수들이 배수진을 치고 열심히 싸웠을 때는 우리가 이겼고 이제 본선 진출권을 획득해서 여유가 생겼다고 방심했을 때는 일본이 이겼다. 차범근 감독은 선수들의 기량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출전시키고는 밖에서 응원만 하고 있었고 일본의 오카다 감독은 90분동안 계속 작전지시를 했다. 우리에게 준 교훈은 그때그때의 여건에 잘 적응하는 훌륭한 선수를 선발해 열심히 경기할 수 있도록 북돋워주는 지도자가 경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시장 경쟁이 월드컵 축구와 같다면 차범근 감독같은 사람이 경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우선 선수들은 규율있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실력은 꾸준한 실전을 통해서도 쌓아야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위해 노동개혁은 신속하게 추진돼야 한다. IMD 평가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하락한 것은 노사분규가 극심하게 발생하면서 부터다. 노동법 개정은 특정조항에 야당이 반대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협상을 통해서 실기하지 말고 통과돼야 한다. 누구의 탓이라 하기 전에 우리 국회가 해야 할 일이다. 현재 인기가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몰려올 더 큰 파도에서 대량실업을 피하기 위해서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인기있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무한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우리 선수단을 이끌어 나갈 사람이어야 한다. 경제 대통령은 경제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이기는 경제를 만들어가는 국가 경영인이어야 한다. 선수선발에는 공정한 선발규칙이 있어야 하고 엄격하게 선발된 선수는 유능한 코치에게서 경기규칙과 방법을 익혀야 하고 감독이나 코치는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므로 선수들이 세계 자유시장이 결정한 규칙 안에서 창의성을 발휘해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주고 보호해줘야 한다. 행정규제완화는 세계시장 경영원칙에 따라 획기적인 개혁이어야 한다. 우리의 응원단에는 응분의 대가가 주어져야 한다. 우리는 선수와 한마음이 되어 경기를 참관하고 응원했기 때문에 승리의 영예를 나눠 가질 권리가 있다. 국민 모두가 선진 국가 시민이 되어야 한다. 왜 외환이 부족할 때마다 해외여행을 줄여야 하고 외국산 상표를 사지 말하야 하는가. 선진국 시민이 되려면 선진국을 보고 배워야 하고 국산상품의 품질이 나쁘면 벌을 주는 의미에서 미국산이라 하더라도 품질 좋은 상품을 살 권리가 있다. 세계화를 위해 국수적인 사고를 개혁해야 한다고들 하지 않았던가. APEC을 통해 우리는 경기규칙을 빨리 터득하고 익혀야 한다. 경제협력은 경제원조가 아니다. 경쟁자와의 협력은 경기규칙을 수립해 경기를 공정하게 치르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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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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