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경기침체와 양극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성장은 하면서 양극화가 심화돼 성장이라도 하고 있다고 변명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저성장 기조에 양극화까지 심화되고 있는데도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양극화 없는 성장에 대한 대안들이 제시되면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론'에서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상위 1%에 해당하는 고소득층에 80%의 한계세율을 적용하고 부의 세습을 막기 위해 부유세를 신설해 이를 국제공조를 통해 실행할 때 심화되는 양극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이윤주도 성장론 대안으로 임금주도 성장론이 대두되고 있다. 그동안 기업이윤을 높여 투자를 통해 성장하는 이윤주도 성장전략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윤이 늘어났는데도 기업투자가 늘어나지 않자 이윤보다 임금을 높여 소비를 통한 성장전략이 제시되고 있다. 소비가 늘어나기 위해서는 소득이 늘어나야 하므로 임금과 최저임금을 높이거나 복지를 강화해 소득을 높이고 이를 통해 내수를 부양해 기업투자를 늘게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전략은 일본의 아베 정부나 최경환 경제팀도 시도하고 있다. 임금인상이나 배당을 늘여 가처분소득을 높여 소비를 늘리고 내수를 부양하는 신 내수부양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최근 대두되는 임금주도 성장 혹은 소득주도 성장론과 유사하다. 이는 기존의 분배를 통한 성장과 성장을 통한 분배에 대한 논란을 재점화시켜 앞으로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논쟁이 될 것이 예상된다.
피케티의 처방이나 임금주도 성장론 모두 세금제도와 배당제도, 그리고 최저임금제도 등 각종 제도와 연관돼 있다. 실제로 제도 선택은 국가의 성장과 소득분배에 있어 중요하다. 제도는 경제정책의 효과를 나타내게 만드는 틀이기 때문이다. 하버드대의 대니 로드릭 교수는 양극화 없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한 세 개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정책결정자의 올바른 정책선택과 복지제도와 연금제도를 포함한 그 나라 경제여건에 맞는 제도의 선택, 그리고 자본자유화와 같은 세계화를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케티의 주장과 같이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 인상과 부유세 부과만으로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기는 어렵다. 국제공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소득불평등은 글로벌 금융위기나 세계경기 침체와 같은 대외적 요인과 연금제도·복지제도와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과 같이 배당과 임금인상을 통해 소비를 늘려 내수를 부양시키는 대책도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지속되기는 어렵다. 일본은 내수시장이 크나 우리는 내수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를 생각하면 임금인상으로 수출경쟁력이 약화돼 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양극화 없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대안보다 우리 경제여건에 맞게 각종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성장해도 국내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 원인은 가격이 너무 비싸 해외소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윤은 늘어났는데도 기업이 국내투자를 늘리지 않는 이유 또한 경쟁국보다 임금이 높고 각종 정부규제가 심하기 때문이며 현재의 주력산업을 대체할 미래 성장동력이 없기 때문이다. 유통제도와 수입제도를 개선해 지나치게 비싼 국내 가격을 낮춰야 한다. 미래에 대한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교육제도와 기술개발제도를 개선하고 연금 및 복지제도를 확대해서 양극화를 해소하고 과도한 임금인상을 억제해야 한다. 변화된 우리 경제 여건에 적합한 새로운 제도를 만들 때 우리는 양극화 없이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경제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