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정치권이 모럴해저드 부추긴다"

여야, 저축銀 피해자 2억까지 전액보상 추진<br>금융계 "정치권 꼼수에 예금자보호제도 뿌리째 흔들린다" 비판<br>금융당국도 "절대 안돼" 반발<br>후순위채 보상도 논란 일듯


"과거 저축은행이 문을 닫아 피해를 본 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앞으로도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면 그때마다 손실을 보전해줘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금융권 고위관계자) 금융계에서는 정치권의 저축은행 예금피해자 2억원 보상안은 금융산업의 원칙을 무시하는 상식 밖의 결정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내년도 총선을 앞두고 화난 지역 민심을 달래려는 정치권의 꼼수에 1인당 5,000만원까지 보장한다는 예금자보호제도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보호가 주요 설립 목적인 금융감독당국도 이번 일만큼은 "절대로 현실화돼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당장 금융권에서는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정치권은 특정 지역(부산)과 시점(올해 영업정지된 곳)만 배려한다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난 지난 2008년 9월 이후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12곳으로 보상 대상을 확대했다. 하지만 2008년 이전에도 저축은행의 영업정지 사유는 대부분 부실ㆍ불법 대출과 분식회계, 감독당국의 검사소홀이 주요 원인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부산 계열과 문을 닫게 된 원인ㆍ과정이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보상해주고 누구는 놓아두겠다는 점은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특히 이번 안은 투자할 때 본인이 책임을 진다는 금융의 기본원칙을 훼손한다. 높은 금리를 바라보고 위험도가 높은 저축은행과 거래했을 때는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축은행은 시중은행보다 예금금리는 1~1.5%포인트, 적금은 2%포인트 정도 높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문을 닫은 저축은행이 어디 한두 개였느냐"며 "고객들도 계속 매스컴을 통해 저축은행이 문닫는 것을 봐왔고 이를 알고 있을 텐데 이제 와서 초과 예금 부분을 보장해준다는 것은 정치논리에 금융산업이 휘둘리는 꼴"이라고 강조했다. 후순위채 부분도 문제다. 저축은행의 후순위채는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다. 때문에 시중은행 예금금리가 5% 미만인데도 후순위채 금리는 연 8~9%에 이른다. 큰 보상이 따르는 만큼 위험을 떠안아야 하는 상품인 셈이다. 예컨대 금융위기로 '깡통펀드'가 된 우리은행의 '파워인컴펀드'의 경우 원금이 보장된다는 직원의 설명으로 불완전판매가 인정되기는 했지만 손실금액의 절반만 보상해주라는 법원 판결이 있었다. 가입자들도 상품의 위험성을 꼼꼼히 따지지 않은 점을 감안했다는 게 법원의 논리였다. 그런데도 정치권의 저축은행 안은 후순위채의 경우 불완전판매라면 전액을 보상한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신용협동조합 등 다른 권역에서 문제가 불거질 경우 똑같은 방식으로 처리해야 하느냐는 점도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된다. 저축은행에만 이 같은 특혜를 줄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오는 9월 말 경영진단 결과가 발표되면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을 텐데 이때 문을 닫는 저축은행 거래 고객도 모두 구제해줘야 하는 문제도 생긴다. 정치권은 현재 2,800억원 정도면 12개 저축은행의 피해자에게 2억원까지 보상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럴 경우 필요자금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선례를 만들면 예금자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고 우려한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저축은행에 관한 한 예금자보호한도를 2억원으로 하겠다는 얘기 아니냐"며 "외환위기 이후 쌓아왔던 금융산업의 원칙을 흐트러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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