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실속 없는 에너지 절약대책

과천 정부청사에서 근무하는 모 부처 A과장은 지난 2008년 당시 아내의 차량번호판을 바꿨다. 정부가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겠다는 이유로 공공기관 차량 홀짝제를 실시하자 본인 차는 홀수, 아내 차는 짝수로 번호판을 맞춰 정부 조치에 대응(?)한 것이다. 집에 승용차가 한 대인 같은 부처 B과장은 청사에서 1㎞ 떨어진 사설주차장을 월 정기권까지 끊어가며 사용했다. 일주일에 평균 사나흘을 야근하는 처지에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은 B과장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스꽝스러운 이 에피소드는 불과 2년 전 정부가 공공기관 홀짝제를 하면서 벌어진 광경이다. 장ㆍ차관부터 자가용을 관용차와 홀짝 번호판을 달리해 꼼수를 부렸고 주소지 옮기기(집이 대중교통 취약지임을 증명하면 홀짝제 예외), 인근 세차장에 차 맡기기 등은 차라리 애교에 속했다. 에너지 절약 효과는 의심스럽고 불편만 가중됐던 홀짝제는 이듬해 유가가 제자리를 찾으며 슬그머니 없던 일이 돼 버렸다. 정부가 27일 에너지 위기단계를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시켰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연일 녹색성장, 에너지 절약을 강조하느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여력이 없었는지 하나같이 과거 어디선가 많이 본, 효과는 없고 불편만 많은 조치뿐이다. 이런 식의 정부 에너지 대책은 2가지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가뜩이나 에너지 절약시책을 따르느라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공공기관들을 윽박지른다고 에너지 절약 효과가 얼마나 될 지 의심스럽다. 마땅히 새롭게 내놓을 에너지 절약대책이 없는 현실에서 정부가 꺼내든 해묵은 대책들은 "정부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전시성 효과 외에 실제로 에너지 절약 효과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업무능률마저 해치는 과도한 에너지 절약대책은 일 못하는 정부에 핑계거리만을 제공할 뿐이다. 효과도 의심스럽고 불편만 가중되는 정책을 펼 시간에 근본적인 에너지 절약대책을 강구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난방비 아끼느라 내복을 껴입는다'는 식의 액션은 국민에게 냉소거리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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