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현상과 착시

정문재 국제부 차장

모든 사물이나 현상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피라미드가 대표적인 예다. 공중에서 보면 사각형으로 보이지만 땅에서는 눈을 씻고 봐도 삼각형일 뿐이다. 또 같은 크기의 물건이라도 주변에 어떤 것이 있느냐에 따라 크거나 작게 보일 수도 있다. 이른바 착시(錯視)현상이다. 착시를 육안(肉眼)의 한계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다툼이 없다. 그러나 자기주장만 고집하다보면 다툼이 일기 마련이다. 현상은 하나인데 시각과 접근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경제에 대한 진단도 시각차가 매우 크다. 재계는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정부는 “명확한 근거도 없이 자꾸 위기를 부추기는 말들이 오히려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며 반박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최근 비관적 경제전망에 대해 비판하며 내수회복을 위해 중산층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수가 회복되려면 중산층이 튼튼해져야 한다는 지적은 절대로 옳다. 그러나 그의 처방은 중요한 전제를 빠뜨렸다. 중산층은 대부분 근로소득자다. 월급쟁이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살길이 막막해진다. 그래서 중산층은 지금 살얼음판을 걷듯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언제 해고의 올가미에 걸려들지 알 수 없고 최근 2~3년간 부동산 광풍(狂風)속에 은행 대출로 가까스로 집을 마련한 탓에 아파트 가격이 크게 떨어져 담보가치가 급락하지나 않을 까 전전긍긍이다. 중산층을 살리려면 부자가 지갑을 열어야 하고 기업이 투자를 늘려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하지만 ‘있는 자(者)’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그래서 땅에 바싹 엎드린 채 꿈쩍도 않는다. 이들의 불안은 주로 정치권에서 비롯됐다. 의문사위가 간첩을 민주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한 데 대해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대통령은 이를 ‘대통령에 대한 공세일 뿐’이라며 외면했다.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다보니 정체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적화(赤化)’는 이미 이뤄졌기 때문에 ‘적화통일’은 반쯤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섬뜩한 얘기까지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나 부자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뭐가 불안하다는 얘기냐”라며 윽박지르기보다는 기업과 ‘있는 자’들의 시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제는 공중에서 피라미드를 사각형이라고 우기기보다는 땅으로 내려와 피라미드를 봐야 할 시점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