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차명거래 처벌 강화… 은행원이 떨고 있다

차명계좌 개설 땐 금융회사 직원도

5년이하 징역·5000만원 이하 벌금

퇴직 이후에도 처벌받을 수 있어

실명 확인범위도 애매 반발 커져


차명거래 금지와 관련한 처벌 규정이 대폭 강화되면서 일선 은행원들이 떨고 있다. 기존에는 금융실명제법의 테두리에서 은행이 고객의 실명 확인 의무만 졌다면 앞으로는 자금의 출처까지 신경 써야 하는 만큼 단순 안내 등으로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차명거래 범죄 행위에 대한 소멸 시효도 없고 위반 건건마다 처벌이 가능해 금융회사 직원들은 사실상 '잠재 범죄자'로 일해야 할 판이다.


이에 따라 시행령과 시행 규칙 개정안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금융회사 직원들의 반발이 예상보다 크게 나오고 있으며 입법이 최종 갈무리될 때까지 적잖은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4일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차명계좌 개설 시 관련자에 대한 처벌 규정 등의 세부 내용을 다루기 위한 금융권 태스크포스(TF)팀이 꾸려져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이번 TF팀은 지난 5월 초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개정된 법을 반영해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안 등을 논의하게 된다.

이번 개정안은 사실상 차명거래 금지 법안으로 보면 된다.

기존 금융실명제법상에서는 타인 명의로 계좌 개설이 어렵지 않았다. 명의를 위임받아 실명만 확인하면 문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가 세금을 피해 자녀 명의로 계좌를 만들거나 기업의 비자금 조성도 상대적으로 쉬웠다. 실소유자와 명의자가 합의만 하면 별도의 처벌도 없이 세금만 추징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서는 불법 차명계좌 개설 시 실소유자와 명의자를 비롯해 금융회사 직원까지 5년 이하 징역 및 5,000만원 이하 벌금,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도록 했다.

가족·동창·종친회 계좌 등 선의의 차명계좌는 법 적용의 예외로 둔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차명거래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 주관 아래 국민·신한·우리 등 대부분의 시중은행 실무자와 금융투자협회·저축은행중앙회 인사 등이 참여한 TF팀에서도 세부 처벌 규정이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올랐다.


처벌 조항이 대거 강화돼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이를 뒷받침해줘야 하는 상황인데 TF팀에 들어간 은행 등 금융계 실무진의 반발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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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차명거래 범죄는 소멸 시효가 없어 은행원 입장에서 퇴직 이후에도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 크다.

가령 통장 개설 당시에는 차명거래인지 몰랐다가 뒤늦게 발견될 경우에도 직원이 처벌되고 처벌도 위반 건수별로 모두 이뤄지도록 방향이 잡히고 있는 데 대한 반대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또 다른 이슈는 실명확인 위탁 업무 범위와 관련한 것이다.

통상 고객이 은행에서 통장을 개설할 때 증권계좌도 개설이 가능하다.

그런데 차명계좌일 경우 증권계좌에 대한 실명확인 책임도 물어야 하는지가 애매하다. 은행·증권 등 금융회사마다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어 이견 조율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미 은행들은 내부적으로 관련 논의에 골머리를 앓는 분위기다. 드러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책임 소재가 강화된 만큼 준비할 게 많은 탓이다.

한 시중은행 간부는 "처벌과 관련한 세부 조항을 다듬어야 하는데, 탈세 통로를 철저하게 막겠다는 법 취지에 공감하는 것과 별개로 부담되는 내용이 너무 많다"며 "시행령과 규칙 개정과 관련해 논란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다른 은행 고위 임원은 "차명거래금지법이 나오기 전만 해도 자금 출처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며 "구체적으로 어느 선까지 고객에게 알리고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TF팀은 오는 7월까지 2개월간 활동한다는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올해 말부터 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인 만큼 이전에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손본다는 방침이지만 개정 작업이 더딜 경우 시행 시기는 유동적일 수 있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불법 자금을 숨기거나 세탁하려고 차명계좌를 만들 경우 계좌의 실소유주와 명의를 빌려준 사람 모두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차명계좌에 있는 재산은 실소유주가 따로 있더라도 명의자 소유로 추정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재산을 은닉하거나 자금 세탁 등의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개설했을 경우 실소유주와 계좌 명의자 모두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범죄 목적의 차명거래를 중개한 관련 금융회사 직원도 형사처벌을 받도록 했다. 다만 선의의 차명계좌는 허용키로 했다.

현행법은 실명이 아닌 거래만 규제하고 있어 '합의에 의한 차명'의 경우 규제하거나 처벌할 수 없게 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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