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리빙 앤 조이] 진화하는 로봇, 인간의 일상을 노크하다

교육의·료·가사 도우미 등 다양<br>한국로봇 '휴보' · '마루' 日 맹추격<br>상용화 위해 콘텐츠 다양화 시급

춤추는 로봇 '마루'

유아교육로봇 '아이로비'

로봇 배우 에버(오른쪽)

가사도우미 휴머노이드 '마루-M'(왼쪽)과 '마루-Z'

파트너와 대화까지 가능한 섹스 로봇 '록시'

#2010년 1월 15일 한국. "주인님, 아침 식사로 뭘 드릴까요?" 앞치마를 차려 입은 가사 로봇이 거실에서 주인의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커피와 토스트를 가져와." 주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사 로봇은 주방에서 대기중인 또 다른 로봇에게 무선으로 명령을 전달한다. 그러자 주방로봇은 전자레인지에서 따뜻하게 데운 커피와 토스터에서 구운 빵을 함께 바구니에 담아 가사로봇에게 전달하고 가사로봇은 식탁 위에 토스트와 커피를 올려놓는다. 주인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아침식사를 해결한다. #2010년 1월 10일(현지시각) 미국. 키 170cm, 몸무게 54kg, C컵 가슴 크기의 늘씬한 미녀 로봇이 란제리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있다. 그녀의 피부는 합성고무로 만들었지만 마치 사람 같은 부드러운 느낌이며 인공관절을 갖고 있어 사람처럼 움직인다. 그녀의 손을 만지자 "난 당신과 손을 잡는 게 좋아요"라고 말한다. 혼자 걸을 순 없는 그녀지만 주인과 대화하고 피부로 느끼는 것은 물론 심지어 코를 골며 잔다. 신체에 내장된 랩톱 컴퓨터를 통해 주인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등 사랑스런 애인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영화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로봇을 만드는 건 인간의 오랜 꿈이었다. 그래서 로봇은 공상과학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였다. 최근 들어 인간과 꼭 닮은 로봇들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영화 속 가상현실이 실제 우리 생활 속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로봇, 일상 속으로 들어오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인지로봇센터가 지난달 개발, 시연에 성공한 '마루-Z'는 인간에게 보다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가사 도우미 로봇이다. 기존의 인간형 로봇들이 달리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등 단순 활동에 머물렀다면 마루-Z는 현재 위치와 목표물을 정확히 파악한 뒤 손가락으로 전자레인지 스위치를 누르거나 토스트를 꺼내는 등 다양한 동작이 가능하다. 최대 시속 1.5km로 걸을 수 있어 문턱이나 낮은 장애물도 가볍게 넘을 수 있다. 유범재 KIST 인지로봇센터장은 "마루-Z 개발은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서비스 로봇에 필수적인 시각기반 작업기술을 확보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설거지, 심부름, 요리 등 인간의 가사노동을 도와줄 수 있는 지능형 서비스 로봇으로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 성인용품 엑스포(AVN)에서 첫 선을 보인 섹시 미녀 로봇 '록시(Roxxxy)'는 머리색, 피부색, 가슴크기 등을 입맛대로 주문 제작할 수 있으며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돌입했다. 선머슴 같은 '웬디'형, 콧대 높은 '파라'형, 상대를 잘 배려하는 '마샤'형 등 5가지 타입으로 대당 가격은 7,000∼9,000달러선(약 800만~1,000만원). 록시 개발업체는 조만간 남성 로봇인 '록키(Rocky)'도 선보일 예정이다. 유치원에서도 로봇을 만나볼 수 있다. 지난해 3월 서울 성동구 경동유치원을 시작으로 현재 50여곳의 유치원에서 시범운영중인 교사 도우미 로봇 '아이로비'는 매일 아침 출석체크는 물론 아이들에게 안무와 함께 동요를 불러주고 동화도 구연해준다. 친근한 목소리로 "날씨는 추운데 어떻게 왔니?", "오늘 기분은 어때?" 같은 간단한 대화도 나눌 수 있다. 경동유치원 김신영 원장은 "요즘 아이들은 첨단 미디어 환경에서 자란 세대인 만큼 기존 수업방식으론 쉽게 흥미를 유발하기 힘들다"며 "로봇이 아이들의 수업참여도를 높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부터 로봇을 활용해 유아들을 가르치는 'R-러닝(Robot-based Learning)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하고 교사 도우미 로봇 보급을 연내 800여개 유치원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로봇은 인간만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연극무대까지 넘보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개발한 인간형 로봇 '에버'는 지난해 2월 판소리 공연 '에버가 기가 막혀'에 이어 11월 인간배우와 함께 하는 '로봇공주와 일곱난쟁이'의 주연으로 출연했다. 최근엔 로봇 배우들로만 이뤄진 로보라마(무인연극공연) '오즈의 마법사'가 처음 막을 올렸다. 연출을 맡은 김준섭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연기력은 아직 인간배우에 못 미치지만 대신 로봇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장기간 공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로봇, 진화를 거듭하다= 로봇은 체코어의 '일한다(robota)'에서 유래한 말로 체코의 극작가인 카렐 차페크가 1920년 발표한 희곡 R.U.R.(Rossum's Universal Robots)에 일하는 인간기계라는 의미로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인간은 이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장치를 꿈꿔왔다. 고대 그리스의 헤론은 신전 제단 앞에서 타고 있는 불길을 보고 신전 문의 자동개폐장치를 고안했고 동전을 던지면 자동으로 성수(聖水)가 나오는 장치를 발명했다. 현대적인 개념의 로봇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부터다. 1927년 미국 뉴욕의 만국박람회에서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사의 웬즐리가 설계한 '텔레박스'란 로봇이 출품됐다. 상자 모양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텔레박스는 내부에 송수신장치가 설계돼 걸려오는 전화에 대해 일정한 응답이 가능했다. 1934년 웨스팅하우스사는 걷고 말하고 윙크하며 색깔을 식별할 수 있는 로봇 '윌리'를 내놓았고 1939년에는 기계인간 '일렉트로'와 기계로 만든 개 한 마리가 첫 선을 보였다. 아쉽게도 당시 로봇들은 스스로 움직이는데 한계가 있어 실용화되지는 못했다. 1950~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IC)의 발명으로 로봇 기능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컴퓨터에 의해 제어되는 자율이동식 로봇 '샤키'나 세계 최초로 두다리로 걷는 로봇 '와봇1' 등의 등장에 힘입어 인간형 로봇을 주인공으로 한 '마징가 Z' 같은 만화영화도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1990년대는 로봇이 인간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시기다. 1999년 일본 소니사가 애완견 로봇 '아이보'를 개발한 데 이어 혼다, 도요타, 미쓰비시 등도 각각 인간형 로봇인 '아시모'와 '트럼펫 파트너', '와카마루'를 잇달아 선보이며 인간형 로봇 경쟁에 불을 붙였다. 우리나라도 KAIST와 KIST를 중심으로 인간형 로봇 '휴보'와 '마루'를 개발, 세계 로봇 강국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미래의 로봇, 마음까지 입는다= 앞으로 로봇이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서일홍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앞으로 10년 안에 로봇 분야에서 깜짝 놀랄만한 수준의 엄청난 진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한다. 인간의 신체적 기능을 넘어 마음까지 입힌 로봇 탄생이 눈 앞에 다가왔다는 것. 그의 말대로 최근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10년간 개발될 각 산업별 로봇의 로드맵에 따르면 농업분야에서 오는 2013년 제초ㆍ시비ㆍ이앙 로봇이 상용화되는 것을 시작으로 수년내 착유 로봇과 벼ㆍ과수 수확 로봇이 개발된다. 의료분야에서는 수술보조, 캡슐형 치료, 장애인 생활보조 기능을 갖춘 로봇 연구가 이뤄진다. 내년부터 청소 로봇을 필두로 집사ㆍ정원사ㆍ통학보조ㆍ정리정돈 등 가사를 돕는 로봇의 개발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로봇 활용도가 높은 주력산업과 세계 최고의 IT 인프라, 첨단기술에 대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수용도 등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로봇 보급속도는 세계시장을 압도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장명 한국로봇학회장(부산대 교수)은 "국내 로봇 기술은 이미 로봇 선진국인 일본, 미국에 견주어도 크게 뒤쳐지지 않는 수준까지 도달했다"며 "특히 세계 각국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주목하고 있는 서비스 로봇 시장에서 국내의 첨단 IT 인프라를 잘 활용한다면 성장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내다본다. 국내 시장에서 청소 로봇의 보급 속도가 세계 시장에 비해 2배나 빠른 것은 그만큼 국내 서비스 로봇시장의 잠재력이 폭발적인데 힘입은 것이다. 하지만 로봇이 일상생활 속에 확실히 리잡기 위해선 아직 풀어야 과제가 많다. 서일홍 교수는 "최근 아이폰 성공의 일등공신이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이었듯 서비스 로봇의 상용화를 위해 가격경쟁력 확보는 물론 누구나 손쉽게 소프트웨어를 공유할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경철 유진로봇 대표도 "서비스 로봇의 성공적인 상용화는 스마트폰 같은 폭넓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 개발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로봇의 원천기술 확보와 중장기적인 투자계획 수립도 필수다. 유범재 KIST 박사는 "연구개발자들은 사용자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원천기술 개발에 나서는 한편 정부와 기업은 단기간의 실적에 급급하기보다 미래를 보고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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