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금융시장이 출렁거린 14일 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모니터를 보며 주가와 환율움직임을 체크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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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지진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시는 일단 직접적인 영향권에는 들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본에서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데다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선 누출 위험으로 확대되고 있고, 불확실성 확산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도 강화되고 있어서 여전히 금융시장의 방향성을 점치기 힘든 상황이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4일 코스피 지수는 장 중 내내 일본의 피해 상황에 따라 등락을 거듭한 끝에 전날보다 15.69포인트(0.8%) 오른 1,971.23으로 거래를 마쳐 일단 일본 대지진의 영향은 받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화학과 자동차 등 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반사이익을 볼 수 있는 업종이 강세를 보이면서 주가를 끌어올린데다 외국인들도 많지는 않지만 1,346억원 순매수에 나서는 등 수급도 비교적 나쁘지 않았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번 지진이 불행한 사태이기는 하지만 국내 시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태로 그 동안 국내 증시를 짓눌렀던 고유가에 대한 부담에서 일시적으로 나마 벗어났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요인이라는 것이다. 김학균 대우증권 연구원은 “이번 대지진이 역사적으로 금융시장에 아주 불행한 일이기는 하지만 시장 마인드로 놓고 보면 주가가 떨어질 요인은 아닌 것 같다”며 “여행 등 일부 업종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단기적으로 한국기업의 판매 확대로 나타날 수 있고 장기적으로도 일본 경제가 복구의 과정을 겪을 것이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시장 흐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불안 요인이 여전히 잠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날 코스피 지수는 일본 사태의 전개 방향에 따라 하루 종일 오르내림을 반복했고 이에 따라 하루 등락폭도 42.24포인트에 달했다. 하루 변동폭이 40포인트를 넘은 것은 지난달 17일 이후 약 한달 만에 처음이다. 그만큼 시장의 투자심리가 불안하다는 의미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코스피지수가 일시적으로 상승하기는 하기는 하겠지만 방향성을 예단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일본 대지진의 파급 영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아직 불확실하고 중동 사태의 장기화와 남유럽 재정위기, 중국의 긴축 우려 등 최근 증시를 억누르고 있는 악재도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대지진의 피해가 더욱 확산될 경우 자칫 회복세에 있는 글로벌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옥희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우려가 있고 이로 인해 국내 수출 경기 불안과 부품ㆍ소재수입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를 감안할 때 중장기적으로 국내 증시에도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복구자금 마련을 위한 일본 기업과 투자자들의 해외 자산 매각으로 엔화가 일시적인 강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피해 복구를 위해 일본 정부가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으면 결국 추세적 약세로 돌아설 수 밖에 없고 이것이 한국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도 불안요인이다.
홍순표 대신증권 연구원도 “이날 지수가 높게 나타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하락 종목수가 상승보다 훨씬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 심리는 매우 안 좋은 편”이라며 “특히 일본 정부가 재정적으로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천문학적 복구자금의 투입은 결국 엔 약세를 초래할 수 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반사이익을 얻었던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좋아질 지는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대지진으로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가 더욱 심화됐다는 점도 국내 증시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외국인들이 미 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면서 이머징마켓에서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만 보고 판단할 게 아니라 앞으로 일본 사태의 흐름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노근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투자자들이 앞으로의 상황을 모르겠다는 불확실성이 커지면 위험자산에서 자금을 뺄 수 밖에 없고 이는 이머징 주식시장에서의 변동성을 키우게 될 것”이라며 “아직 방향성을 예단하기는 이른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