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과 세상] 유럽 인종주의 희생양 된 阿 여인의 삶

■ 사르키 바트만 (레이철 홈스 지음, 문학동네 펴냄)


140cm의 작은 키. 초콜렛처럼 부드럽고 검은 피부. 화려한 곱슬머리.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보다 더 풍만한 엉덩이. 그래서 그녀는 '아프리카판 비너스'혹은 '호텐토트(유럽인들이 코이족을 부르는 말)의 비너스'라 불렸다. 그녀의 이름은 사르키 바트만. 1789년 남아프리카의 코이족으로 태어나 십대 후반 무렵 약혼식 축제를 벌이던 중 백인 정찰대에 납치당했다. 케이프타운으로 끌려와 한 흑인의 집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사르키는 고용주에 의해 유럽으로 보내진다. 주인은 사르키의 특이한 몸매가 유럽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영국으로 간 사르키는 '호텐토트의 비너스'로 소개돼 육감적인 몸매와 뛰어난 춤과 노래 실력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말이 좋아 '인기'지 유럽인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처참한 삶이었다. 영국의 저술가 레이철 홈스가 쓴 이 책은 19세기 유럽 인종주의의 희생양으로 살았던 사르키 바트만의 이야기다. 그간 사르키를 주인공으로 한 다양한 책이 출간됐지만 저자는 사르키의 불행한 삶을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복원하면서 백인 우월주의에 빠져 있던 근대 유럽인들의 오만과 편견을 꼬집는다. 사르키는 쇼가 인기를 잃어가자 프랑스의 한 박제사에게 팔렸고 파리에서 실물 모델이 되어 실험실에 서게 된다. 1815년 26세로 세상을 뜬 후에도 사르키의 뇌와 생식기는 해부학 실험실의 유리병에 담겨 100년도 넘게 박물관에 전시됐다. 이 표본은 1979년 세상에 알려졌고 이후 넬슨 만델라가 프랑스 정부에 반환을 요청하면서 2002년에야 사르키는 고향에서 안식을 얻었다. 식민주의가 낳은 소외와 비인간화, 인종주의가 남긴 문화적ㆍ정서적 상처는 책을 덮은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1만2,000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