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1일. 전세계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공포에 떨던 그 때, 홍콩에서는 만우절 거짓말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홍콩 영화배우 장궈룽(張國英)이 호텔에서 투신자살로 길지 않았던 생을 마감한 것이다. 향년 46세. 아시아 영화팬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마음이 피곤해 세상을 사랑할 마음이 없다”는 유서는 화려한 스타의 삶 이면에 그가 짊어졌던 깊은 우울증과 절망을 쓸쓸하게 보여줬다. 이제는 낡은 비디오 테이프로만 볼 수 있는 장궈룽을 다시 만난다. EBS ‘시네마천국’은 오는 31일 오후 11시 55분 그의 추모특집을 마련한다. ‘광대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꾸민 코너에서 그의 연기인생을 되짚어보며 영화 팬들 가슴에 아로새겨졌던 그의 모습을 추억한다. 77년 홍콩의 한 가요제를 통해 22살의 나이로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80년대 국내에서 홍콩 느와르 영화 열풍이 불면서 홍콩의 스타였던 장궈룽은 한국 팬들에게도 본격적으로 인기를 모으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캐릭터는 여타 홍콩 배우들과는 달랐다. 남성적 비장미를 물씬 풍기던 여느 홍콩의 액션스타와는 달리 장궈룽은 그만의 수줍은 듯한 미소와 함께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여린 눈빛으로 소녀 팬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슬픈 눈빛으로 죽어가던(‘영웅본색’) 장궈룽은 ‘천녀유혼’에서 처녀귀신과 운명적인 사랑을 나눈다. 팬티 바람으로 맘보 리듬에 맞춰 귀여운 춤을 추던 ‘아비정전’ 속 모습으로 장궈룽은 그만의 아우라를 완전히 다지기에 이른다. ‘백발마녀전’과 ‘패왕별희’, ‘해피투게더’를 거치며 화려하면서도 허무한 듯한 그의 연기세계는 점점 깊이를 더해갔다. 프로그램에서는 여성성과 남성스러움을 마음껏 넘나들었던 영화 속 그의 모습을 다시 되새긴다. 그 누구보다도 죽음을 많이 연기했던 배우로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죽음을 택했던 그의 마지막 모습까지 되짚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