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분쟁의 씨앗' 석유

중동·중앙亞등 전쟁·테러 잦아진다<br>강대국 석유확보 패권다툼 갈수록 치열<br>그루지야·이라크戰등 민족분쟁·테러 제거 명분 불구<br>실제론 美·러등 유전·송유관 차지 속셈 깔려있어<br>유전지역 곳곳 충돌 잇달아 '세계의 화약고' 긴장 고조



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전쟁이 석유에 대한 이해를 둘러싸고 벌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 미국의 이라크 점령, 체첸 사태는 민족 분쟁, 테러세력 제거라는 대의명분을 내걸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유전과 송유관을 확보하려는 강대국의 이해가 걸려있다. 최근 러시아가 그루지야에 대해 5일간 군사작전을 펼친 배경에는 코카서스 에너지 회랑(corridor)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루지야엔 자원 생산량이 많지 않지만 인근 카스피해에서 생산된 원유를 유럽으로 공급하는 석유수송의 전략적 요충지다.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와 터키의 세이한을 잇는 BTC 송유관과 러시아의 국영 에너지 기업인 가즈프롬의 송유관도 이곳을 통과한다.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장악할 경우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유럽을 더욱 좌지우지할 힘이 생긴다. 그루지야의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그동안 러시아와 거리를 두고 친서방 정책을 취해왔다. 미국은 카스피해 유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그루지야에 매년 3,000만 달러 이상의 군사비를 지원해왔다. 그루지야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을 서두르며 친서방정책을 강화하자 러시아가 자신의 뒷뜰에 매장돼 있는 에너지자원을 눈뜬채로 놓칠수 없기에 남오세티아 민족분쟁을 명분으로 전쟁을 벌였다는 해석이다.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20세기 후반을 관통해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19세기 나폴레옹 전쟁때만 해도 전쟁은 기마병과 대포의 힘에 의존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에서 말의 힘을 이용한 기마병과 기름을 원료로 하는 전차의 싸움에서 기름의 우위가 인정됐다. 2차 대전에 앞서 미국은 일본에 석유 금수조치(엠바고)를 단행하면서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다. 지난 1990~91년의 걸프전은 서방세계가 쿠웨이트 석유를 보호하기 위해 침략자 이라크를 축출하는 전쟁이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세계 3위 원유 매장량을 확보한 이라크를 얻기 위한 전쟁이었음은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증언에 의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러시아가 코카서스 산악지대의 소국 체첸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그곳을 지나는 송유관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중국이 신장위그루 분리주의자를 탄압하는 것은 그 지역에서 석유가 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송유관 관통을 반대한 탈레반 정권을 축출한 것은 석유의 이해가 개입됐다는 흥미로운 분석도 있다. 아프리카의 수단과 앙골라의 내전도 석유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과 일본의 남사군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도 석유와 천연가스 등 지하자원에 대한 개발 목적이 강하다. 대표적인 반미 국가이자 자원민족주의 국가인 중동의 이란, 남미의 베네수엘라 등과 서방 세계의 갈등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다. 이들 국가는 석유 자원을 무기로 서방세계와 대립 각을 세우고 있으며 서방세계는 경제 봉쇄 등 각종제재 조치로 맞서고 있다. 미국이 중동 석유에 관심을 둔 것은 1차 대전 직후였다. 1차 대전이 끝난 1920년 이탈리아 북부 휴양도시 산 레모에 영국과 프랑스 외교관이 만나 몰락한 오스만 투르크의 영토를 어떻게 나눠먹을지를 논의했다. 당시만 해도 고립주의를 채택해온 미국으로선 700년 역사의 투르크 제국 영토를 분할 통치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그때 메소포타미아의 유전에 관심을 둔 미국인이 있었다. 그는 지금 미국 최대석유회사 엑슨모빌의 전신인 스탠더드 오일 오브 뉴저지의 A C 베드포드 회장이었다. 베드포드는 산 레모 협상 소식을 친구로부터 전해듣고 국무부를 찾아갔다. 그는 "앞으로 석유를 장악한 자가 세계를 차지할 것이며, 세계최대의 석유매장량을 확보한 메소포타미아 문제 해결에 미국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미 국무부는 중동 문제를 '경제적으로 중요한 사안'으로 취급했고, 미국의 중동 개입은 여기서 시작한다. 국제석유시장은 오일쇼크가 이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엑슨ㆍ모빌ㆍ셸ㆍBPㆍ걸프ㆍ텍사코ㆍ소칼등 미국과 유럽의 7대 메이저(seven sisters)에 의해 장악됐다. 그러던 것이 중동 산유국들이 자국 유전을 국유화하면서 오일 쇼크가 터졌고, 석유수출국기구(OPEC)라는 국제카르텔에 의해 공급자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두차례의 오일 쇼크를 겪은후 미국은 중동 산유국에 대한 원유 의존을 줄이기 위해 두가지 방법을 취했다. 첫번째가 중동에 대한 원유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 석유개발을 늘리는 길이다. 1980년대에 영국 북해에 대규모 유전이 개발됐고, 남미 베네주엘라, 구소련 지역에 유전이 속속 확인되면서 중동의 세계 석유 시장 점유율이 낮아졌다. 그러나 새로운 수입원으로 확보한 베네주엘라도 2002~2003년 장기 총파업의 여파로 공급이 중단된데 이어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반미 정권이 들어섬으로써 석유 수입이 어려워졌다. 게다가 미국내 석유개발도 여의치 않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선거 공약으로 에너지 개발 정책을 제시하고, 알래스카와 멕시코만 연안의 유전 개발을 서둘렀지만, 환경론자와 그들을 등에 업은 민주당의 반대로 좌절됐다. 9ㆍ11 테러를 계기로 미국은 다시 중동과 구소련의 코카서스로 눈을 돌렸다.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은 중동 아랍국에서 배출됐고, 그들의 뿌리를 뽑으려면 아프가니스탄 점령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런데 중동은 테러 세력의 근원지인 동시에 세계 최대 석유 생산지라는 특수성이 존재하고, 코카서스는 러시아가 뒤에 버티고 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전쟁과 테러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은 석유의 이해를 둘러싸고 강대국과 현지국가와의 충돌이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김정곤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