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90년대말 실권 장악… 강력한 카리스마로 인기몰이

■ '마초' 푸틴의 정치 인생

러시아 사람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를'마초', '터프가이'라는 별명으로 즐겨 부른다. 그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과거 공산혁명으로 집권한 레닌이나 스탈린 같은 절대권력을 행사한 이들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그가 시베리아의 예니세이강에서 화끈하게 웃통을 벗은 채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은 그의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정치 전문가들은 장기 집권을 의미하는 푸틴의 대통령 복귀에 대한 일부의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의 12월 총선 승리와 푸틴의 내년 3월 대선 승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푸틴 총리는 90년대 말 권력 암투 속에서 실권을 장악한 뒤 4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연임 한 후 지금까지 실세 총리로 군림하고 있다. 1999년 8월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에 의해 총리 대행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푸틴의 정치인생이 시작됐다. 그해 12월 옐친이 전격 사임하면서 대통령 직무대행을 떠맡은 푸틴은 이듬해 3월 대선에서 53%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크렘린에 입성한 푸틴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으로 위기에 빠진 러시아를 안정시키며 국민의 신뢰를 얻어갔다. 러시아 연방과 두 차례나 전쟁을 치르며 독립을 시도하던 체첸 자치공화국을 무력으로 굴복시켜 러시아인의 자존심을 살렸다. 옐친 시절 온갖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뒤 정치적 영향력까지 휘두르던 신흥재벌(올리가르히)에 대한 대대적 사정을 단행했다. 그는 '원숭이도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던 재벌들의 오만을 꺾어 정치권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때마침 찾아온 고유가 상황을 적극 활용해 1998년 디폴트(채무불이행)까지 몰렸던 경제상황을 반석 위에 올렸다. 실제로 그가 집권한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러시아는 연 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러시아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지난 1999년 2,000억 달러에 머물던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은 2008년 1조5,000억 달러로 7배 이상 늘었다. 2000년 960달러에 머물렀던 1인당 국민소득도 2008년 7,680달러로 훌쩍 뛰어올랐다. 하지만 푸틴은 2008년 5월 대통령 연임을 금지한 헌법 조항으로 인해 크렘린궁을 떠나야 했다. 그 뒤를 같은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레닌그라드 대학(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법대 후배로 20여년간 동고동락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지목했다. 총리가 된 이후에도 푸틴은 막후에서 상왕(上王) 역할을 계속해왔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그의 허수아비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근거다. 더딘 경제회복과 근절되지 않는 부정부패, 민주주의 후퇴 등을 비판하는 국내외의 반대여론이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60%대를 웃도는 지지율을 나타내며 그의 정치적 입지는 여전히 견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