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위기의 한국은행

늑장 통화정책<br>경기진단 오류<br>직원사찰 논란

"지난 25일은 한국은행 역사에서 '치욕의 날'로 기록해도 될 것입니다."

기자와 만난 한국은행 전직 고위인사는 26일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가 언급한 25일은 19대 국회 첫 업무보고가 이뤄지던 날이다. 이날 김중수 한은 총재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질의는 '직원사찰' 논란으로 뒤범벅됐다. 한은의 고유업무인 통화정책이나 경기전망 등에 대한 질의는 사찰 논란에 묻혀버렸다.

한은의 한 직원은 "전국민이 지켜보는 업무보고에서 통화정책이 아닌 직원사찰로 질타를 받았다"며 "창피해서 하루 종일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제정책의 쌍두마차인 한은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한은 통화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상황에서 '개혁인사'라는 이름이 초래한 후폭풍으로 내내 시달리더니 급기야 직원사찰 논란까지 불거지며 한은에 대한 불신의 늪이 깊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한은 집행부의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론까지 일고 있다. 잘못된 경기진단과 그에 기반한 늑장대응으로 경제정책의 미세조정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경기변동의 진폭만 키운다는 시장의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기준금리 결정에 한 표를 행사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까지 "한은의 경기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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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사례가 한은의 경기전망. 한은은 13일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로 4월 전망치 3.5%보다 낮춰 잡았다. 불과 3개월 만에 성장률을 0.5%포인트나 내린 것이다. 시장에서는 3.0%라는 수치도 너무 낙관적이라는 의견이 대세다.

더 큰 문제는 소통능력 부재다. 김 총재 취임 이후 시장에서는 '한은의 금리정책 방향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는 불만이 팽배해지고 있다. '금리동결' 신호를 보내고 금리를 인하하는가 하면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았다.

외부소통뿐 아니라 내부소통 부재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직원사찰 논란은 '김중수식 밀어붙이기' 개혁의 역효과가 표출된 사건이라는 게 한은 내부의 평가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한은이 위기에 빠진 금융시장을 주도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며 "경기회복ㆍ물가안정ㆍ가계부채 문제 등 시장의 현안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적절하게 대응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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