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해진 해외시선, 필연적 결과= 외환은행의 DR발행 실패는 어찌보면 예견된 상황이었다. 8월초 10억달러의 DR를 발행했던 한빛은행은 삼성자동차 법정관리라는 복병을 만나 한차례 연기끝에 21% 할인된 6,500원이라는 헐값에 자본을 유치해야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같은 발행은 성공작이었다.대우 워크아웃을 전후해 불거진 금융시장의 불안과 투신사 유동성 부족상황은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 투자자들에게 국내금융시장에 대한 불신을 촉발하기 시작했다. 시장불안 속에서 한국물에 대한 매수세력은 극히 위축돼갔다.
무엇보다 주가상황이 최악이었다. 대우사태 이후 외환은행의 주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해 마지막 기준일이었던 지난 4일 주가가 5,260원까지 곤두박질쳤다. 지난달 14일 로드쇼를 시작한 이후 하락률이 15%에 달했다. 이에따라 은행측은 대외적으로는 발행가격으로 5,400원 정도로 내세웠으나 내심으로는 상장사 최저발행한도가인 액면가(5,000원)로라도 목표금액인 10억달러를 채울 수 있기를 바랬다. 그러나 싸늘해진 해외시장은 이마저도 용납하지 않았다.
◇여타 발행예정기관들 초긴장= 외환은행의 발행실패 소식이 전해진 5일, 조흥은행은 초긴장 상황에 들어갔다. 조흥은행은 이달 18일부터 외환은행과 같은 10억달러 규모의 DR를 발행하기 위한 로드쇼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러나 믿었던 외환은행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조흥은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금융시장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외환은행의 실패가) 남의 일같지 않다』고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연말까지 4억달러 규모의 DR를 발행할 예정인 한미은행도 상황은 마찬가지. 대우그룹에 적지않은 여신을 갖고 있는 한미은행은 상황에 따라서는 발행일을 내년으로 넘기는 방안도 조심스레 추진중이다. 주가가 형편없이 떨어져 있는데다 발행가격도 턱없이 낮은 수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은행권외에 오는 11월께 DR발행을 통해 주식 해외매각을 추진중인 담배인삼공사 등 여타 기관들도 이번 실패로 엄청난 부담을 안게됐다.
◇현실로 다가오는 「은행 손대기」= 외환은행은 이번 발행실패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9.35%수준을 유지, 생존 하한선인 8%는 넘을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최악의 경우 7.3%선까지도 각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감독당국에서는 은행의 BIS비율을 완화해 이같은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도 조심스레 검토하고 있기는 하다. 이용근(李容根)금감위 부위원장은 지난달 『대우사태로 인해 은행의 BIS비율이 8% 밑으로 떨어질 경우 적기시정조치를 한시적으로 유보하고 대손충당금 적립부담도 완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때에따라 일부 은행에 대한 감독조치가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는 자칫 풍문으로만 떠돌고 있는 2차 은행구조조정 작업을 앞당기는 기폭제로 작용할수도 있음을 내비치는 대목이다. 1차적으로는 정부가 나서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권의 BIS비율을 높혀주겠지만, 이를통해 해결이 불가능할 경우 은행권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합병 등 구조조정 작업을 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금융시장 전체에도 불안요소= 정부는 현재 대우그룹과 투신사 처리에도 벅차하고 있다. 은행의 건전성 부분은 뒤로 미뤄둔 상황이다. 은행의 건전성 악화는 이제 더이상 금융시장 불안의 먼 객체로 남을 수없게 됐다. 정부가 투신사 문제에 대해 미처 해결가닥을 잡기전, 또 이에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회복되기전 은행의 건전성 문제가 수면위로 불거짐으로써 시장불안은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금융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불안요소는 연말 은행권의 외화유동성에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증폭되고 있다. Y2K문제발생에 대한 우려로 11월중순 이후에는 해외투자가들로부터의 기채시장이 꽁꽁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의 외화유동성이 가뜩이나 빡빡한 시점에 기업들의 연말 자금수요까지 맞물릴 경우 상황은 보다 복잡해질 수 있다. 정부차원에서 은행권에 대한 모종의 대책마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영기기자YG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