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플라자]<스크린 속 패션>3. 화양연화
1962년 홍콩. 리첸(장만옥)과 차우(양조위)는 공교롭게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한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 두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각자의 배우자가 자신들 몰래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고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는 과정에서 사랑이 싹튼다.
'화양연화(花樣年華)'는 결코 통속적인 불륜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서로에 대해 끌리지만 감정을 애써 절제하는 두 남녀의 모습은 이 영화를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이 영화는 60대 유행한 복고풍 의상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장만옥은 영화가 끝날때까지 잔뜩 부풀려 올린 머리에 눈꼬리를 강조한 화장, 그리고 몸에 달라붙는 중국식 의상으로 일관한다.
양조위의 기름을 발라 뒤로 넘겨 빗은 머리라든가 몸에 딱 맞게 재단 된 복고풍 양복은 촌스럽기까지 하다.
장만옥의 의상을 주목해보자. 단순히 시대를 반영하는 복고풍 의상으로만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 목이 올라오는 빳빳한 차이나 칼라에 흐트러짐 없는 옷차림은 차라리 도덕과 사회규범에 갇혀 지낼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의 심정을 암시하고 있다.
우연히 차우와 함께 한방에서 밤을 지새게 된 리첸이 끝까지 구두를 신고 있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옷 몸매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낸 것은 자신의 원숙한 여성미로 사랑하는 사람 앞에 '여자'로 보이고 싶어하는 그녀의 내면적인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라는 뜻의 화양연화(花樣年華). 리첸(장만옥)을 수식하는 표현으로 이보다 좋은 말이 있을까.
윤혜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