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모토(橋本) 내각의 구조개혁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최근 열린 일본의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4년 전 개혁에 실패해 물러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내각과 현 내각을 비교하는 야당의 지적에 강한 반론을 펼쳤다.
날로 악화되는 경제환경 속에서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고이즈미 내각을 4년 전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했던 하시모토 내각과 비교하는 목소리가 다시 제기되기 시작했다고 아사히(朝日) 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미국의 테러와 국내 광우병 사태 등으로 경기가 곤두박질 치는 상황에서 현 내각이 단기적으로는 경기회복에는 찬물을 끼얹는 격인 구조개혁에 나선다는 점 때문.
지난 12일 예산위원회에서 자유당의 한 의원은 "총리의 방식이나 나라의 경제 사정이 하시모토 내각 ?와 매우 흡사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사실 지금의 경제 사정은 금융 불안 직전인 지난 97년 당시보다도 안 좋은 실정이다.
소비는 4년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위축되고 있고, 실업률은 전후 사상 최악.
당시에 어느 정도 안정됐던 물가는 경기를 끌어내리며 계속 떨어지는 악성 디플레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금융기관이 떠안은 부실채권도 금융위기에 직면했던 당시보다 오히려 부풀어 올랐다. 기업 도산이 17년만에 최악의 수준에 달한 가운데 개인의 소비심리도 얼어 붙을 대로 얼어붙은 상황. 정부가 매달 발표하는 월례경제보고의 경기판단은 올들어 7번째로 하향조정됐다.
앞날도 어둡기만 하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내년 초부터 미국의 경기 둔화에 따른 새로운 악영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것. 지금까지는 내년 후반에 경기가 저점을 통과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지만, 악성 디플레가 심화될 경우 당분간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부에서는 일본 경제가 또 한 번의 '10년 불황'에 빠져드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고개를 들고 있다.
하시모토 내각이 거론되는 것은 이처럼 경제여건이 수렁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 지난 97년 하시모토 내각은 소비세를 높이고 공공사업 삭감을 추진하는 등 강도 높은 재정개혁에 나섰지만, 이로 인해 급속도로 경기가 얼어붙자 돌연 특별 감세를 실시하는 등 정책의 일관성을 잃고 결국 98년에 내각이 중도 퇴임하는 불명예를 안았었다.
이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는 하시모토 내각이 "민영화에 소극적이었다"는 점과 소비세를 인상한 점 등을 들어 두 내각의 차이를 강조하는 한편, 특수법인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등 개혁 의지가 퇴색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고비는 지금부터라는 것이 정치권의 견해다. 이미 자민당 내부에도 경기 악화를 이유로 고이즈미식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데다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아픔'에 대한 처방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반발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한 측근은 "모두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총리가 결단하는 전략"이라며 "주위가 시끄러울수록 총리에게는 유리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는 그만큼 고이즈미 개혁이 난관을 겪고 있음을 반증하는 말이라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분석했다.
신경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