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양적완화-시장개입… 환율전쟁의 이율배반


미국 재무부는 최근 발표한 반기 통화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을 자제하도록 압력을 넣겠다고 공언했다. 미국 정부가 한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한다고 비판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보다 구체적이며 강력하게 외환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세계 무역에서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작해서 자국의 대외경쟁력을 높이고 상대국에 피해를 주는 것은 반칙이다. 이것은 '이웃을 거지로 만드는' 정책이며 환율전쟁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현재 진행되는 환율전쟁도 선진국과 신흥국들이 공격적인 환율 조작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신흥국들이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를 매입해서 달러 값을 올리면 미국은 양적완화(quantitative ease)로 채권을 무제한 매입해서 달러 약세를 유도한다. 그동안 선진국은 신흥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일방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이제 선진국 또한 비(非)전통적인 양적완화로 환율 조작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이후 원ㆍ달러 환율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자 정부는 은행의 선물환포지션 한도 축소, 외국인의 채권 투자 과세, 외환 건전성 부담금 부과 등 대책을 마련해왔다. 그러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양적완화로 쏟아져 들어오는 미 달러화를 억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FRB는 국제통화인 달러화를 무제한으로 찍어낼 수 있다. 미국은 환율 조작국에 대해서 쓸 수 있는 실탄이 많다. 미국은 환율전쟁에서 유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달러화 대비 다른 통화의 가치가 상승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단기적으로 원화가치 상승 속도를 완만하게 조절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선진국의 양적완화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은 분명하다. 장기자산 가격이 상승할 것이고 스위스 등 통화정책 기조가 덜 팽창적인 국가나 수익률이 높은 신흥국으로 달러자금이 유입될 것이다. 자금 유입이 급증한 국가들은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통화가치가 절상되도록 내버려둬 대외경쟁력에 손실을 입거나,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불필요한 달러화를 축적해 국내의 물가 안정을 해치거나, 또는 자본 통제를 통해 자금 유입을 억제하는 등의 선택을 해야 한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선택도 생각해볼 수 있다.


중국은 국내 물가 상승을 억제하고 위안화 절상을 제한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의 막대한 재정 적자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반대한다. 중국은 독일이 그리스에 대해 그렇게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디플레이션을 통한 조정을 원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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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B는 현재 미국 경제가 부채 때문에 디플레이션에 빠질까 봐 걱정한다. FRB가 충분히 물가가 오를 때까지 추가적 양적완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천명한 것도 이런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최근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새 정부도 경제가 디플레이션을 벗어나고 인플레이션이 2%에 달할 때까지 무제한 통화증발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일본의 양적완화에 따른 엔저(低)의 최대 피해국은 한국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9월 이후 원화는 달러화보다 엔화에 대해 더욱 가파르게 올랐다. 그 결과 일본과 경쟁 관계인 우리의 자동차ㆍ전자 등 많은 경쟁 품목의 수출이 감소하고 주가도 침체에 빠졌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대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선진국들이 무제한으로 양적완화를 지속하면 세계 무역과 자본 이동은 보호무역주의로 빠져들고 세계 경제는 심각한 불황에 빠질 우려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 정부는 복지ㆍ경제민주화 등 대내적인 개혁 과제 못지않게 중대하고도 시급한 환율전쟁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또한 세계 주요 20개국(G20) 등과 함께 환율전쟁을 종결하기 위한 대화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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