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조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진적 확장을 추진하는 기업형 슈퍼(SSM)와 이를 생존권 위협으로 여기는 영세 슈퍼들 사이의 갈등은 아직도 여전하다. 나아가 대기업과 중소상인 간 영역 다툼과 갈등은 서점ㆍ주유소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197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정부는 영세 슈퍼의 상품구매력과 물류 시스템 등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슈퍼 관련 지원조직들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해왔다. 나름대로 많은 진전을 이뤘지만 경쟁력 있는 슈퍼 조직으로 키우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실패의 원인은 우선 여러 지원과 혜택을 받은 슈퍼 관련단체들에 있으며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관리를 소홀히 한 정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그리고 영세 슈퍼나 재래시장의 문제를 주민들과 소비자의 관점에서 함께 풀어야 할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상공회의소 등도 일부 책임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영세 슈퍼 사업자들 스스로 뼈를 깎는 소비자 밀착형 경영노력이 미흡한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성공한 '총각네 야채가게'는 영세 슈퍼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알려져 있다.
영세슈퍼, 고객 밀착 경영 필요
1996년 유통시장이 완전 개방되면서 그동안 답습해오던 일본식 유통방식과 사고 논리(시장논리와 사회적 논리의 병행)가 급격히 서구식 유통방식과 글로벌 경쟁논리로 바뀌면서 영세 슈퍼와 재래시장 등 경쟁력이 취약한 업태는 급속히 쇠퇴하게 됐다. 전반적으로 과거의 잘잘못을 떠나 현재 입장에서 보면 영세 슈퍼나 상인들의 경쟁력은 대기업에 비해 매우 취약하며 이를 지원할 관련단체와 전문조직도 매우 미약한 실정이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우선 이 문제의 궁극적인 열쇠는 소비자 즉 주민생활자들에 달려 있다. 슈퍼는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든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기본적인 소매업태이며 그에 따라 주민생활과 밀착해 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역생활자들은 양질의 상품을 저렴하고 편리하게 제공해주는, 자기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즉 냉장고역할ㆍ창고역할ㆍ부엌역할을 하는 점포를 선호한다. 현재의 어떠한 갈등구조를 차치하고라도 이에 대한 업태의 지속적인 진화와 발전은 이뤄져야 한다.
상기의 기본방향은 대규모 유통업체든 영세업체든 모두가 추구해야 할 사항이며 다만 부익부빈익빈과 사회적 갈등차원에서 영세 슈퍼업체들의 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고 정부가 다각적인 지원노력을 강력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영세 슈퍼라고 해서 모두가 살아날 수는 없다. 일정기간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는 점포는 소비생활자와 지역경제 차원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른 사회적 문제는 정부가 또 다른 지원방안으로 사회적 선을 달성해야 한다. 그러면 영세 슈퍼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가장 우선적으로는 영세 슈퍼 관리자가 목숨을 걸고 소비생활자에게 헌신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그에 따르는 다양한 역량을 쌓도록 노력해야 한다. 조그만 슈퍼지만 상권별로 경쟁력 있는 점포도 적지 않다. 이들의 공통점은 필사즉생의 심정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소비생활자의 대리인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중소 슈퍼가 생활자 밀착형으로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이들 상품을 제때에 원하는 양만큼 제대로 제공해주는 도매 물류기관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가맹점 본부나 협동조합 단체가 공동브랜드 사업이나 공동물류센터 차원에서 접근해왔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대로 이들은 그다지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향후 경쟁력 있는 새로운 조직 패턴이 나타나야 한다.
예컨대 프랜차이즈 사업형태, 지역협동조합 지주회사, 지방자치제 중심의 공동브랜드 및 마케팅 회사, 기존 가맹점 본부의 지역별 연합 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 이들을 적극 발굴해야 하며 향후 공동물류센터도 상기의 성공적인 조직 패턴과 연계될 수 있도록 설립, 운영돼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들 슈퍼업체들의 조직화 및 지원에 대해 명확한 비전과 단계별 추진 전략 그리고 그 효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예산을 투여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할 것이다.
특히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연계를 바탕으로 지자체 차원에서 주민생활자의 복리증진과 지역경제 활성화, 그에 따른 영세상인들에 대한 보호와 경쟁력 향상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관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자체 내 점포에 대한 맞춤형 현장지도로 지속적인 경쟁력 향상을 위한 노력도 꾀해야 한다. 그리고 등록제나 사업조정제도는 이러한 통합적인 그림 속에서 보완적으로 사용돼야 하며 부득이한 경우에 갈등해소 방안으로서 한정적으로 사용돼야 할 것이다. 또한 협의회 외에도 다양한 갈등해소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SSM은 해외 경쟁력 더 키워야
현재 영세상인과 대립하고 있는 SSM과 대형업체들은 대승적 차원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특히 중국 등 동남아 시장 진출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종합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소매 경쟁력과 가격안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품이나 원자재 구매 등 수입유통 분야의 효율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정부는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