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버려졌던 녹슨 기찻길 그곳에선 다시 뉴요커의 심장이 뛴다

뉴욕 첼시 '더 하이라인'<br>철도 느낌 살려 풀밭 조성 자연 친화적 공원 탈바꿈<br>주민들의 휴식 공간 넘어 과거·미래 공존 관광지로<br>문닫은 과자공장 시설 활용 '첼시 마켓'도 명소로 인기

고층 건물과 도로로 가득 차 있는 뉴욕의 맨해튼. 맨해튼 첼시 지역을 가로지르는 2.3km길이의 철로는 '다리 위 공원' 으로 변신해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색다른 휴식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사진=더 하이라인 공식 웹사이트

지상 2~3층 높이의 '더 하이라인'에 올라서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옛 철도의 흔적을 남겨둔 채 마련된 휴식공간에는 자유롭게 이곳을 즐기는 뉴요커들이 모여든다.




뉴욕에서 요즘 뜨고 있는 장소는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는 곳이 아니다. 기존에 있는 것을 아름답고 환경친화적으로 '재활용'한 곳이 트렌디한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00여년간 '새 것'으로 트렌드를 이끌어온 뉴욕은 이제 무언가를 보존하고 거기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찾고 있는 것이다. 뉴욕 맨해튼 서남쪽 15번가부터 34번가까지. 허드슨 강가에 위치한 첼시는 낡고 허름하지만 독특한 멋을 뽐내며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지역이다. 지난 1990년대부터 값싼 임대료를 찾아 소호에서 옮겨온 작가들이 작업실과 갤러리를 열면서 주목 받기 시작해 현재는 200개 이상의 갤러리가 모여있는 예술 지구로 자리잡았다. 허드슨 강을 따라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의 갱스부르가에서 34번가까지는 고가 철도가 이어져 있다. 지상 9m 높이의 철도에 올라가면 눈이 휘둥그래지는 공원이 펼쳐진다. 이 고가철도가 바로 '더 하이라인'이다. 2009년 1구역 개장을 시작으로 최근 2구역이 완성된 하이라인은 기존 철로의 강철 느낌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풀밭과 인공천을 만들어 자연 친화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다리 위 공원'이다. 특히 공원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허드슨 강이, 반대편에는 첼시 지역이 펼쳐져 있어 전망이 장관이다. 하이라인에 올라서면 너무나 편안하게 일광욕을 즐기는 뉴요커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한편으론 당황스럽기도 하다. 도심 한가운데서 수영복 차림으로 강렬한 햇살과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일광욕을 즐기는 시민들도 종종 눈에 띈다. 총 2.3㎞ 길이로 이어져 있는 이 철도는 '미트패킹'이라는 지역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래 1930년대 육가공업체가 밀집했던 이 지역에 육류와 우유 등 화물을 수송하기 위해 설치됐다. 그러나 육류 산업이 쇠퇴하고 화물차가 활성화되면서 이용이 중단됐고 1980년대부터 방치돼 녹슨 철도는 세련된 도시 뉴욕의 흉물로 전락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뉴욕 시가 이 흉물을 철거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주변 주민들이 '하이라인의 친구들(Friends of the High Line)'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옛 철도를 보존하자고 나선 것이다. 뉴욕시는 1999년부터 10여년간의 계획과 3년 이상의 공사 기간, 1억5,230만달러의 예산을 투입해 2009년 6월 철도를 도심 속 새로운 휴식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당시 갱스부르가에서 20번가까지 1구역을 개장한 데 이어 6월 20번가에서 30번가까지 2구역이 완공됐다. 우리나라의 마구잡이식 재건축과 달리 기존 시설의 틀과 역사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점은 높이 살 만했다. 또 시가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이라인의 친구들이 예산의 30%에 가까운 4,400만달러를 직접 모금했다. 현재도 공원 운영비의 70%를 이 단체가 마련하고 있으며 하이라인에서 벌어지는 각종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이 단체가 운영한다. 하이라인은 주민들이 함께 마련한 휴식 공간이자 문화공간, 나아가 역사ㆍ관광 공간으로 자리잡으면서 개장 1년 만에 200만명의 관람객을 모았다. 2009년 개장 당시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하이라인이 웨스트 첼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고 그 기대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첼시 근처에는 이렇듯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든 공간들이 곳곳에 있다. 미트패킹 지역은 고급 패션매장과 부티크ㆍ레스토랑 등이 입주했고 나이트클럽ㆍ호텔 등이 들어서며 뉴욕의 가장 뜨거운 지역으로 떠올랐다. 육가공 공장과 도축장이었던 기존 건물 틀을 그대로 유지한 덕에 이곳 갤러리들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얼마 전 우리나라 여성복 브랜드 '구호'도 첼시의 한 갤러리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오레오 쿠키로 유명한 나비스코사의 공장이었던 '첼시 마켓'도 이곳의 관광명소다. 1959년 과자 공장이 문을 닫자 기존 외벽과 일부 시설을 그대로 둔 채 독특하고 재기발랄한 마켓으로 재탄생했다. 이곳에는 브라우니로 유명한 '팻 위치 베이커리', 뉴욕 대표 빵집 '에이미 브레드)', 인기 브런치 숍 '사라베스 베이커리' 등이 있다. 또 하나의 뉴욕 명소가 된 첼시 지역을 돌아 보니 기존의 공장과 창고를 그대로 둔 채 문화와 예술을 더했다는 점 때문에 우리나라의 재개발과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 뉴욕은 과거와 미래를 어떻게 공존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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