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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르담시 도심에서 북해변의 ECT 터미널을 보기 위해 A15번 고속도로를 달리다 기자는 어마어마한 로테르담항만 배후부지에 또 한 번 놀랐다. 로테르담시 도심에서 마스강을 따라 북해 ECT까지의 거리는 대략 40㎞. 강 남쪽에는 끊임 없이 부두가 들어서 있고 폭 4~5㎞규모로 그 부두들과, 도심에서 북해변까지 이어지는 A15번 고속도로 사이에는 물류단지, 정유공장, 석유화학 공장들이 가득차 있었다. 일부지역에서는 고속도로까지 넘어서 상당부분 확장돼 있다. 현대상선 로테르담 지사 하현규 차장은 "단순한 상품의 보관ㆍ배송 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별로 다양한 언어ㆍ문화에 맞게 조립ㆍ포장ㆍ라벨링 같은 부가가치 활동이 많이 일어나 진짜 돈을 버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로테르담 항만공사(Port of Rotterdam)측은 로테르담 항만구역이 1,634만평(54㎢, 로테르담시 외곽 그레이트 로테르담지역 포함땐 3,176만평)에 달하고, 이중 정유ㆍ유화산업이 무려 560만평(18.5㎢)으로 전체의 34%나 차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물류단지(Distripark)도 마스블락트 등 3개 부두 배후에 총 74만평(246만㎡)이나 차지한다고 한다. 그레이트 로테르담지역까지 포함할 경우 보관면적이 무려 236만평에 이른다. 항만 배후지역과 배후 산업단지가 어우러져 나라를 먹여 살리는 중추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허브 싱가포르항만의 배후지역도 기능이 비슷하다. 물류단지가 탄중파가ㆍ케펠ㆍ파시르판장 부두 등의 배후지역과 알렉산드라 지역을 포함해 4곳에 부지면적만 총 23만505평(76만2,000㎡)에 달한다. 대체로 고층 빌딩으로 건설돼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항만구역내 산업단지(Industrial Park)도 주롱 섬을 중심으로 408만9,800평(13,52㎢)이나 됐다. 터미널 운영사업자 PSA의 크리스토퍼 찬 부장(Manager)은 "케펠 디스트리파크에는 머스크 같은 글로벌 물류기업 50여개가 들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 동북아 물류허브 항만으로 육성되는 부산항은 어떨까. 컨테이너 항만인 북항의 경우 배후에 물류단지가 아예 없다. 부산과 경남 지역에 산재해 있는 물류창고 부지 면적은 고작 35만7,000평 정도. 항만과 직접 연계된 제조업단지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이제 신항을 개장하고 배후에 대규모 물류단지를 분양하고, 항만과 공항을 중심으로 배후 지역에 자유무역지역과 경제자유구역(FEZ)을 지정, 외자 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무엇보다도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은 세계 산업의 추세가 신국제 분업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는 것. 선ㆍ후진국간의 '산업간 분업'이 물류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전세계 곳곳에서 생산된 부품ㆍ원자재를 모아 조립한 다음 전세계 또는 권역별로 공급하는 '산업내 분업'모델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미쓰이 물산은 지난 2005년 부산 감천항에 물류기지를 구축, 이태리ㆍ프랑스ㆍ중국등 전세계에서 구매한 다품종 소량 제품들을 이곳에서 집산해 세븐일레븐 등 일본내 소비지로 신속히 배송하는 허브로 활용하고 있다. 창원에 공장을 두고 불도저ㆍ포크레인 등 중장비를 생산하는 스웨덴 볼보사. 한국에서 80%, 스웨덴과 일본에서 각각 10%의 부품을 조달해 조립, 동남아와 중동, 유럽, 미주 지역에 각각 25%,50%,25%씩 파는 판매물류 모델을 활용하고 있다. 부산신항옆 녹산단지에서 입지한 중국 칭다오 금왕그룹은 녹산 양초 생산공장을 더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녹산 공장 확장은 바이어인 월마트가 ‘코리아 브랜드’ 가치를 인정, 녹산 양초를 칭다오 양초보다 10~20% 비싸게 사주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 동북아 시장을 겨냥해 우리 허브 항만 배후에서 성공한 이들의 사례는 우리에게 희망을 던져준다. 물류의 중심인 항만ㆍ공항 배후단지와 경제자유구역, 그리고 주변 산업단지까지 연결해 잘 개발하면, 제조업의 탈한국을 막고 물류에 기반한 글로벌 기업들도 유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해양수산개발원 이성우 박사는 “중국 여건이 나빠지고 있어서 타겟 마케팅을 벌일 경우 글로벌 기업들을 끌어들이는 게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다”며 “5%의 가능성이라도 중국시장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콩고물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 국가에는 단순 노동자, 지식산업 노동자가 필연적으로 함께 존재한다. 우리의 아들 딸들이 모두 잘 살아갈 수 있게 하려면 첨단 고부가 서비스 산업도 중요하지만 제조업도 포기할 수는 없다. 미국, 서유럽 할 것 없이 선진국들도 산업의 고부가화와 더불어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온간 인센티브를 부여하며 제조업체 유치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로테르담과 싱가포르 항만 주변을 돌면서 기자는 희망을 보았다. 우리도 항만배후부지와 경제자유구역, 주변 산업단지에 힘을 집중시킨다면 물류허브가 신기루만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란 예감이다. 로테르담·싱가포르港성장 비결은 "항만클러스터 고도화"
선박연료 급유 경쟁력 높이고 수리조선업 활성화도 서둘러야 "다른 기항지에서 넣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값이 싼 로테르담이나 싱가포르에서 기름을 넣습니다" 해운 회사 선원들은 선박 연료의 벙커링(급유) 장소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한결같이 이렇게 답했다. 로테르담항의 선박 급유가격은 유럽에서 가장 싸고 싱가포르항은 아시아에서 가장 싸다. 이들 지역에선 왜 석유가 쌀까. 모두 원유 생산지에 가까운데다 초대형 네트워크(파이프라인 또는 항만)를 기반으로 정유, 화학산업이 일찍부터 발달했기 때문이다. 저유기지도 엄청나게 많다. 싱가포르는 전략적으로 첨단 유화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5~10년간 완전면제 해줄 정도다. 로테르담과 싱가포르는 유럽과 아시아의 석유거래중심지(오일허브)로 자리 잡았다. 오일허브 구축으로 물류허브 강화는 물론, 오일 선물ㆍ선도시장까지 형성돼 금융허브 성장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쳤다. 그러면 우리는 어떨까. 한국도 정유산업은 세계 5위의 정제능력을 보유할 정도다. 그러나 오일허브로서의 기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003년 기준 HFO(선박 추진기관 연료로 대부분 벙커씨유) 급유실적이 싱가포르가 2,206만MT(중량톤), 네덜란드 1,202만MT인데 비해 4분의1내지 절반인 565만MT에 그쳤다. 우리가 동북아 오일허브로 파고들 수는 없을까. 가능성이 없지 않다. 선박급유 벙커링 가격이 이미 중국, 일본, 대만 등 경쟁국보다 싼데다 리스크 회피, 장기 구입 등을 감안하면 충분하다는 것. 석유공사 동북아에너지네트워크팀 김창규 부장은 "울산 등에 저유기지를 건설하고 국제 탱크 터미널 회사를 유치한다면 동북아시장 정도는 커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항은 항만물류사업 중 하나인 수리조선에서도 모범을 보였다. 항만물류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1년 63.5%이후 해마다 줄어 2004년 58.6%까지 위축됐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은 해마다 증가, 1조5,663천만원(25억5,900만달러)에서 1조9,11억원(31억600만달러)로 21.4%나 증가했다. 저임을 무기로한 중국 등의 반격에 대응해 선종교체작업부문, LNG선 등 특수선 같은 고부가 선박수리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떤가. 부산지역 수리조선업의 부가가치는 지역 총생산(GRP)의 약 1%에 그친다. 기준치가 달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는 점을 감안해도 열악한 것은 속일 수 없다. 게다가 대부분 영세한데다 중국 수리조선업의 부상으로 그마저 위태한 실정이다. 그렇지만 부산항이 동북아의 허브항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수리 조선업의 활성화가 불가피하다. 항만에는 이밖에도 선용품공급업, 항만관광산업, 컨테이너 수리사업 등 선박운항에 필수적인 사업이 적지 않다. 이들 산업이 잘 되면 그 만큼 돈도 더 많이 벌지만 항만이 커지는데도 불가결한 요소다. 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로테르담항의 2004년 항만물류산업 전체의 부가가치는 7조4,456억원(60억2,000만유로)로 GRP의 16.3%에 달하고 싱가포르항은 2002년 같은 산업 부가가치가 5조4,003억원(88억2,300 싱가포르 달러)으로 전산업 부가가치의 5.9%에 달한다. 컨테이너 항만만 잘 된다고 해서 물류허브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항만물류산업 클러스터의 고도화만이 살 길이다. 김형태 해양수산개발원 박사는 "선박급유 시장은 상하이를 중심으로 이남은 싱가포르 권역에 속하지만 이북은 다르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 충분히 새판을 짜고 중심이 될 수 있다"며 희망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