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GQ 릴레이 인터뷰] 좌승희 경기개발원 원장(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일류를 일류로 대접해야 일류국가 된다"


"일류를 일류로 대접해야 일류국가 된다" [GQ 릴레이 인터뷰] 좌승희 경기개발원 원장(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최형욱 기자 choihuk@sed.co.kr 신경립기자 klsin@sed.co.kr 사진=김동호기자 “참여정부는 대외적으로는 일류국가가 되겠다면서도 내부적으로 일류를 폄하하고 밖으로 몰아내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좌승희 경기개발원 원장(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은 서울 충무로 서울경제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내 “일류를 대접해야 일류국가가 된다”며 ‘평등’을 중시하는 현정부에 대한 쓴 소리로 일관했다. 수도권ㆍ대기업ㆍ서울대ㆍ우수인재의 발전을 제약하는 지금의 평등주의는 우리나라의 양지를 음지로 끌어내려 사회를 하향 평준화하고 있다는 게 좌 원장의 지적이다. 그는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좋은 정책”이라면서도 “지금처럼 경제주체들의 손발을 묶을 경우 오히려 산업공동화를 부추겨 우리 경제에 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좌 원장은 “지난 20년간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지배하면서 한국 경제를 끌어내렸다”며 “우리 경제가 중진국 함정에 빠진 지 10년이 넘었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그는 차세대 지도자의 최우선 덕목으로 ‘차별화 리더십’을 꼽았다. 모두를 하향 평준화하는 게 아니라 ‘스타’는 우대하고 가난한 사람은 끌어올려 대한민국 전체 국민을 양지로 끌어내는 리더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 진입이라는 측면에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한다면. ▦선진국이란 잘사는 나라다. 부유한 사람, 흥하고 발전하는 사람, 열심히 일해 일류 경쟁력을 가진 ‘스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들이 한국에 있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대접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일류국가가 되겠다면서도 일류를 폄하하고 밖으로 몰아내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인다. 참여정부는 대외적으로는 자유무역협정(FTA) 등 발전지향적인 개방정책을 취하고 대내적으로는 일류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일류를 몰아내고 불편하게 만드는 발전역행적이고 반선진화된 정책을 펴고 있다. FTA는 좋은 정책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국내 경제 플레이어들의 손발이 묶여 해외로 속속 떠나가는 마당에 FTA가 체결되면 한국시장은 공동화될 수 있다. 국내 기업이 경영규제와 입지규제, 노조 문제 등 3중고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시장이 개방되면 미국 기업들과 경쟁하기 어렵다. FTA라는 좋은 정책이 자칫 우리 경제에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국토 균형발전도 같은 맥락에서 보는가. ▦의도는 좋지만 잘하는 지역의 발목을 잡아서는 국가 전체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지금의 정책은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을 하향 평준화하는 것이다. 앞서가는 사람이 역할 모델이 돼 사회 전체를 향상시키듯이 수도권이 발전 모델이 돼야 한다. 가령 대전ㆍ충남의 1인당 소득이 국내 2위를 차지하는 것은 경기도라는 제조업 벨트가 있기 때문이고 경기도가 경제규모를 키운 것은 서울이 있기 때문이다. 즉 발전은 서울-수도권-지방 순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지금 지방이 어려운 것은 발전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서다. 그러니 균형발전의 핵심은 수도권 규제가 아니라 지방 발전이 돼야 한다. 수도권은 그대로 두고 낙후지역을 보살피는 정책을 펴야 한다. 마찬가지로 강남은 한국의 뉴욕이 될 수 있도록 놓아두고 대신 부산ㆍ광주에 강남을 만들면 된다. 그것이 균형발전이다. -10년 이상 전부터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는 지적인데 성장률 지표상으로는 참여정부 들어 성장률이 하향 수렴된 것 아닌가. ▦성장률 하락은 지난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 1990년대 이후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도 꾸준히 떨어져 지금의 4%선으로 하락했다. 4% 성장률이 나쁘지 않다는 시각은 패배주의다. 선진국이 되면 성장이 둔화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선진국 가운데 성장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미국이다. 결국 성장률은 어떤 정책으로 국민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사회의 역동성을 창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4% 성장률로는 국민들이 먹고 살 만한 일자리, 대학 졸업자들에게 중산층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기에 역부족이다. 기업이 수출로 벌어들인 수십조원을 해외로 들고 가게 만드는 일류폄하주의로는 일자리도 늘어날 수 없고 내수 또한 살아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상태에서 선진국 진입 가능성은 없는가. ▦앞서 말한 변화가 없다면 지금으로서는 어렵다. 모두 일류가 되겠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열심히 하지 않을 변명을 할 수 있는 국민이 많으면 선진국의 길은 요원하다. 국가가 세계적 리더이자 강국이 되려면 모든 국민을 일류로 만들어야 하는데 모두를 하향 평준화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차기 정부는 국민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 정부가 국민을 먹여 살린다는 ‘슈퍼데모크라시’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잘살고 못사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복지제도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선진국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글로벌스탠더드라고 하지만 사실 선진국이 다 잘한 것은 아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지난 20~30년 동안 1% 이하의 저성장에 빠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복지정책이 약자를 돕는다는 생각으로는 제도를 강화할수록 국가가 어려워진다. 복지정책을 발전정책으로 생각해 국민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선진국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저소득층이 음지에서 편하게 지내도록 지원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해 양지로 나올 수 있도록 에너지를 만들어줘야 한다. 가난하고 어려운 것이 정부로부터 무조건 대접 받는 조건이 돼서는 안 된다. -교육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교육문제 해결에도 다른 이치가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학생을 양성하려면 공부 잘하는 사람, 뛰어난 사람을 대접하면 된다. 평준화 교육을 강조해서는 교육 개선이 이뤄질 수 없다. 리더는 다른 사람과 다르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리더가 나오지 않는다. 지금은 30~40년 전 서울대에 갈 만한 학생들이 모두 미국으로 간다. 이런 상태에서 국내에 차세대 리더가 나올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1등을 해도 집이 잘산다는 이유로 장학금을 주지 않는다. 대접을 못 받는다면 공부하는 데 신이 나겠는가. 잘한 것을 자랑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하는데 성적이 좋고 노력하는 사람은 없애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만들려는 교육제도를 따른다면 국가는 망한다. -해외에 거주하는 우수 인재 유치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이중국적 허용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의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기준을 세워놓고 국내로 들어오라고 해봐야 소용없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식이 언제까지나 통하지는 않는다. -기업으로 화제를 돌려보자. 국내 제조업체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데. ▦중소기업의 일자리 창출효과가 크니까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정부의 소신, 제조업보다는 서비스 부문을 키워야 한다는 인식의 잘못이 크다. 잘못된 이념에서 나온 정책이 제조업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대기업의 투자는 중소기업 수요로 이어지고 결국 중소기업 일자리 창출로 연결된다. 그런데도 대기업 투자보다 중소기업만 늘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또 대기업 규제, 특히 입지 규제 탓도 크다. 국내의 각종 규제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이 제조업 부문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우선 국내 정책적으로 제조업에 불리한 여건을 없애야 한다. 그런 다음 대외시장이 개방되면 FTA는 우리 경제에 좋은 약이 될 것이다. -국제 기준으로는 서비스업의 진입장벽도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데. ▦수년 간의 육성책에도 불구하고 서비스업 발전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규제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업은 중소기업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서 안 될 이유가 없다. 사실 우리나라는 강한 자본이 할 일이 많지 않다. 기업이 한 해에 10조원씩 벌어도 쓸 데가 없다. 금산분리 때문에 금융업 진출은 막혀 있고 농업 부문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규제가 많으니 해외로 나가는 것이다. 그 결과 내수가 침체되고 서비스업도 개선되지 않는다. 대기업에서 번 돈이 내수로 유입될 길이 이념 때문에 차단돼 있다는 얘기다. 국제경쟁력을 가진 것은 결국 대자본이다. 강한 자본에 특혜를 줘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각각 역량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규제는 풀어줘야 한다. 지금 같은 정서와 정책구도에서는 서비스업이나 농업 육성이 어렵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평등과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이상 중 평등이라는 관점에 너무 무게가 실리면 시장경제가 잘되기 어렵다. 미국이 흥한 이유는 평등보다 자유를 강하게 추구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변화과정에서 ‘다름’이 없으면 변화가 있을 수 없고 경제에서도 발전은 차등을 통해 나온다. 잘하는 사람에게 힘이 몰리고 경제력이 집중되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수도권 집중 때문에 나라가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집중이 돼야 대한민국이 잘된다고 볼 줄 알아야 한다. 20년 간 평등이라는 이상은 한국 경제를 꾸준히 끌어내렸다. 이제 앞으로 등장할 리더는 차별과 차등의 이치를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모두를 하향 평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강자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이른바 차별화 리더십이다. ‘스타’는 우대하고 가난한 사람은 끌어올림으로써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으로 대한민국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양지로 끌어내는 리더가 돼야 한다. "과도한 평등·균형 슈퍼데모크라시가 중진국함정 원인" 좌승희 경기개발원 원장은 한국 경제가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중진국 함정에 빠진 이유로 '슈퍼데모크라시(Superdemocracy)'를 꼽았다. 평등과 균형에 대한 이상이 과도해진 초(超)민주주의가 경제를 누르면서 민주주의의 정치적 이상이 시장의 발목을 잡아 우리 경제가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좌 원장은 "자본주의에서는 시장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며 "차이가 없으면 변화가 시작되지 않고 발전도 없다"고 말했다. 미국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Robert B Reich)는 '슈퍼캐피털리즘(Sipercapitalism)'이라는 책에서 미국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소득이 불평등해짐에 따라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는데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5공화국 이후 우리 정책에 포퓰리즘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오면서 강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다"며 "우리나라가 중진국 함정에 빠진 지 10년은 넘었다"고 설명했다. 평균화에 치중하면서 반(反)부자ㆍ반대기업ㆍ반수도권ㆍ반서울대 등 반일류적 정책이 정착되면서 사회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는 것이다. 좌승희원장은 어떤 사람 국내의 대표적인 시장주의 경제학자인 좌승희 경기개발원 원장은 1946년 제주 태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와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석사 과정을 거쳐 미국 UCLA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 미국 연방준비은행(FRB) 이코노미스트에서 1985년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 자리를 옮겨 거시경제팀장, 법경제ㆍ세계화개혁팀장 등을 두루 거쳤으며 KDI 원장까지 지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부터 2005년까지는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으로 시장경제 전파에 앞장섰으며 이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겸 경기개발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진화론적 재벌론' '명령으로 안 되는 경제' 등이 있으며 지난해 출간한 저서 '신국부론'에는 평등주의를 벗어난 '차별'이 한국 경제의 발전을 이끈다는 그의 메시지가 집약돼 있다. 입력시간 : 2007/09/03 17:06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