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50돌 맞는 전경련, 존재 이유 있나] <1> 정경유착 악습만 고집

사회는 급변하는데… 구시대적·독선적 발상만 쏟아내<br>'돈으로 유력 정치인 매수' 도덕 불감증에 아연실색<br>양극화·실업·상생문제도 졸부식 생색내기에 그쳐<br>"기업발전·사회통합 저해" "소명의식 없다" 시선 싸늘



지난 2004년 2월18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경제강국을 향한 기업인의 다짐'을 발표했다. SK글로벌 사태로 촉발된 대선자금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돼 사법처리를 앞두게 되자 부랴부랴 자정 선언에 나선 것이다. 5개항의 결의문 가운데는 '새로운 정치자금제도를 준수하고 이를 위반하여 재계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기업에 대해서는 엄정한 자체 징계조치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새로운 성장산업 발굴과 투자 활성화, 일자리 창출,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 상투적인 미사여구도 빼놓지 않았다. 그로부터 7년여가 흐른 7월11일 엄치성 전경련 사회본부장은 4대 그룹 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문건 하나를 내놓았다. 전경련과 대기업들이 여야 유력 정치인들을 '맨투맨'으로 맡아 총수의 국회출석 요구를 막고 소위 '반(反)대기업정책 입법'을 저지하자는 내용이었다. 언뜻 보면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가능한 로비 논의 정도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입법저지를 위해 나열된 방법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후원금, 출판기념회, 행사 후원, 지역민원 해결 등 한마디로 '돈'으로 입법부를 매수해 총수와 대기업의 이익을 얻겠다는 정경유착의 추악한 모습이 담겨 있었던 것. 기업이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제공하고 지역구 행사를 지원하는 것은 현행법상 명백한 불법이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기업이 아닌 임직원 개인 자격으로 후원금을 내려고 했다는 군색한 변명만 늘어놓았다. 또 "정병철 상근부회장과 이승철 전무는 모르는 일"이라며 하위직원들을 희생양 삼아 위기를 모면하려는 '도마뱀 꼬리 자르기'에 급급한 태도를 버리지 않고 있다. 창립 50주년을 맞는 전경련이 시대착오적 사고를 재연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도덕 불감증으로 점철된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전경련의 태도에 대해 '로비 공모자'로 이름이 오른 그룹들은 분개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거나 "옛 군사정권 시절인 줄로 착각하고 있다"는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이 방안은 논의 당시 참가한 그룹사들의 반발로 폐기됐다. 이는'관치경제의 유물'인 전경련이 회원사의 눈높이에서 얼마나 뒤처져 있고 구태의연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런 전경련의 행태는 일부 인사, 즉 '양철(정병철ㆍ이승철)'로 불리는 무능하고 독단적인 최고임원진과 이들에게 줄을 선 일부 사무국 간부들의 비뚤어지고 구시대적인 사고에 기인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회는 숨가쁘게 변해왔는데 독선적이고 화석화된 인식에 머물러 있는 일부 인사들이 전경련을 시대에 역행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자신에게 관대하면서 남의 잘못에는 인색한 것도 문제다. 최근 전경련이 현행 교과서에 '대기업이 정부의 특혜로 성장했고 정경유착의 문제가 있었다'고 강조된 것은 잘못이라며 교육과학기술부와 국사편찬위원회에 수정을 요구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전경련이 우리 경제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극복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기는커녕 오히려 소아적 발상으로 '총수ㆍ대기업 이기주의'만을 고집해온 것은 이 일뿐만이 아니다. 양극화 심화, 대졸자 실업난, 비정규직 빈곤화 등 공동체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한국병 극복이 이슈가 될 때마다 전경련은 구조적으로 파이를 나누려 하기보다 그저 편협하게 총수와 대기업의 이익만 강변하는 '천민자본주의'적 행태를 반복해왔다. 정치권 로비 회의 다음날인 지난달 12일 전경련은 '법인세 증세 피해기업 100개 중 95개는 중소기업'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오는 2012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던 법인세 최고세율 20%를 22%로 다시 높일 경우 피해기업 95%는 중소기업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울러 법인세 증세 피해를 당하는 대기업 비중은 2.5%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는 주요 선진국들이 법인세 인하 경쟁을 벌이는 것을 볼 때 법인세 낮추기는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기업의 95%가 중소기업이라고 강조한 발표는 국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인 상황에서 당연한 동어반복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특히 법인세 감면 금액의 대부분이 대기업 몫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중소기업을 위하는 체하는 진실성 없는 이런 주장은 거꾸로 법인세 인하분을 투자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돌리려는 대기업들의 순수성마저 왜곡시키고 있다. 이 발표 바로 전날 나온 '국민 10명 중 5명, 국민연금기금 고갈방지 시급' 주장 역시 '국민연금이 투자한 대기업에 대한 주주권 강화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2.8%로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말을 하기 위해 만든 작위적인 보고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비록 잘못된 포퓰리즘에서 출발했지만 정치권이 법인세 인하 철회를 추진하는 근본적 이유는 '부익부 빈익빈' 탓이다. 연기금 주주권 강화나 일감 몰아주기 과세추진 역시 재벌체제 또는 경제력 집중의 폐해에서 비롯됐다. 더불어 사는 사회와 경제정의 실현에 동의한다면 전경련은 당장의 일을 모면하려는 '곡학아세' 대신 진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기업들의 실천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맞다. 사회공헌이라는 명목으로 얼마를 내놓고 또 재래시장 상품권을 수십억원어치 샀다는 식의 돈만 던져주는 태도는 졸부식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이런 전경련의 행태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국민들은 차제에 시대적 소명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대기업 발전과 사회통합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전경련을 해체해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끊고 재계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정경유착을 하는 전경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재계단체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소수의 대기업을 대변하는 전경련은 자정기능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재계단체로 상공회의소가 있고 우리도 대한상의가 있다"며 "재계 이익단체이자 자율규제기구로서 대한상의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