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이기업 이장면] LG텔레콤

지난 10월 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이문호(李文浩) LG 구조조정본부 사장과 영국 BT(BRITISH TELECOM)의 리차드 슬로그로브 아·태지역 담당 사장 간에 국내 통신업계 사상 최대규모의 전략적 제휴 조인식이 있었다. BT가 LG텔레콤에 5,219억원을 투자키로 한 것. 이날 조인식은 양쪽 당사자 뿐아니라 다른 통신업계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순간이었다. ◇LG텔레콤에게 주는 의미 이날은 LG텔레콤이 세계 통신시장을 주도하는 BT를 파트너로 맞으며 국제 통신업계에서 위상을 한층 높이는 순간이었다. LG텔레콤은 BT에서 유치하는 자급을 올해 5,000여개의 光기지국을 설치하고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며 영업력을 강화할 뿐아니라 고객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데도 투입할 방침이다. 한마디로 LG텔레콤은 경쟁이 치열한 국내 시장에서 일단 자금면에서 상당한 여유를 갖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LG텔레콤은 BT의 통신사업에 대한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 사업운영 능력을 대폭 강화할 수도 있게 됐다. 특히 BT의 명성과 세계적인 사업망을 이용하면 해외사업을 추진하는데도 든든한 힘을 얻게 됐다. 사실 BT는 LG텔레콤 외에도 한국통신을 비롯해 국내 여러 통신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추진해 왔다. 그러다 마지막에 LG텔레콤의 손을 잡았다. 왜 BT는 100년 역사를 가진 한국 최대의 통신업체인 한국통신을 두고 탄생 1년 밖에 안된 LG텔레콤을 파트너로 택했을까. 배경을 설명하는 일화 한가지. BT는 LG텔레콤의 기술력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光PCS 기술의 효율성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 3차례에 걸쳐 본사에서 기술진이 방한(訪韓)해 조사를 벌였다는 것. 본필드 BT회장은 LG텔레콤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탄탄한 재무구조와 뛰어난 기술력이 파트너로 삼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BT에게 주는 의미 BT에게도 의미가 크다. BT는 최근 일본·중국·싱가포르·말레이지아·인도·뉴질랜드 등에 활발히 투자하고 있다. 세계 통신시장에서 이머징 마켓으로 떠오르는 아시아 시장에 본격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BT는 LG텔레콤과 제휴를 맺음에 따라 앞으로 한국을 발판으로 아시아 시장 공략을 한층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LG에 대한 추가 투자는 물론 해외 동반 진출도 모색하겠다』는 본필드 회장의 말은 BT의 이같은 의욕을 잘 나타내 준다. 그는 지난 3일 양사의 투자협정 축하 리셉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가 영국으로 돌아가며 세계 BT 임직원에게 배포되는 「BT커뮤니케」라는 잡지에 LG텔레콤을 집중 소개하라고 지시하는 등 높은 관심을 표시하기도 했다. BT는 이와 함께 그동안 주로 주력해온 유선분야에서 벗어나 무선시장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LG텔레콤의 뛰어난 CDMA(부호분할 다중접속)기술이 단단히 한몫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CDMA기술은 GSM(유럽방식의 이동전화)이 절대적인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 이동통신 분야에서 최근 맹위를 떨치며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기술. BT는 LG텔레콤의 CDMA기술에 상당히 높은 가치를 둔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양사의 제휴는 전형적인 윈-윈 전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LG텔레콤과 BT와의 협상은 불과 5개월에 전격적으로 성사됐다. 지난 5월 중순 양사가 전담팀을 구성, 접촉하기 시작해 2개월만인 7월말 BT의 투자위원회가 승인을 했다. 8월에는 구본무(具本茂) LG회장이 직접 영국으로 날아가 본필드 회장을 만나 전격 합의함에 따라 급진전됐다. ◇국내 통신업계에 주는 의미 양사의 협상 성사는 국내 통신업계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BT와 같은 굴지의 통신업체가 한국의 통신시장을 높이 평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꾸준히 논의되고 있는 통신업계, 특히 이동전화업계의 구조조정에도 큰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그동안 논의돼온 구조조정의 근거는 이동전화 업체들이 중복·과잉투자로 부실이 심화돼 이대로 두면 한국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자끼리 통폐합을 하든 업체 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좁은 시장에 비해 사업자가 너무 많아 시장 전망이 극히 어둡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어두운 시장에 BT가 선뜻 5,000여억원을 투자했다. 어느 업체보다 분석력이 강하고 투자의 노하우를 갖춘 BT가 말이다. 물론 BT는 국내 PCS업계가 한두개 업체로 통합될 경우에도 LG텔레콤은 살아남을 것으로 분석했기 때문이기도 하겠만 어쨌던 BT는 한국의 이동통신 시장을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는 밝은 시장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결국 BT의 투자로 국내 통신업계의 구조조정 논의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백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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