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다시 생각하는 그린스펀 효과

양정록 생활산업부 차장 jryang@sed.co.kr

세계의 중앙은행이라고도 불리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지난 96년 12월 한 만찬석상에서 미국 중앙은행의 역사에 대해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그 유명한 ‘거품’과 ‘과열’이라는 단어가 나왔고 다음날 전세계 금융시장은 폭락양상을 보였다. 그가 기침만 하면 세계의 금융시장은 독감에 걸린다는 그린스펀 효과를 잘 보여준 순간이었다. 요즘 경제학의 한 용어처럼 된 ‘그린스펀 효과’라는 말이 그때 생긴 셈이다. 지금도 그린스펀의 연설이 있는 날에는 세계가 그의 입을 주시하고 있다. 그린스펀은 역대 미국 행정부의 신뢰를 둠뿍받으며 최근 타계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래 FRB 의장을 내리 다섯번 연임하며 20여년 동안 전세계 금융권을 좌지우지하는 인사로 군림하고 있다. 그의 한마디가 천근의 무게를 갖는 것은 냉정하고도 치밀한 분석의 바탕 위에서 나온 신뢰감이 버팀목이 됐을 것임은 쉽게 짐작이 간다. 최근 산업은행에서 21개 업종, 1,218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해 5월31일 발표한 올 3ㆍ4분기 산업경기 전망을 보면 3ㆍ4분기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104로 나왔다. 대기업이 1ㆍ4분기 103, 2ㆍ4분기 104에 이어 3ㆍ4분기 106으로 상승세를 보였고 중소기업 또한 1ㆍ4분기 88, 2ㆍ4분기 94에 이어 3ㆍ4분기에도 102로 상승세를 보여 앞으로의 경기를 좋은 쪽으로 전망하고 있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총선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수출호조세가 지속됨에 따라 내수경기 또한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반면 같은 날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1,315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한 BSI 조사에서는 지난 2ㆍ4분기 105에서 3ㆍ4분기에는 89를 기록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발표한 자료가 이같이 천양지차를 보이는 것에 대해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취재현장에서 만난 한 광고주는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최근 활황세를 보이는 방송 광고물을 구매하고 싶어도 소비심리가 급랭할 경우가 우려돼 망설여진다”고 밝혔다. 신문지상으로 자료를 접한 독자들 역시 어느 자료가 맞는지 헷갈릴 것이다. 그동안 각종 경지전망 지수는 조사기관마다 다소의 차이를 보이고 조사기관의 성격에 따라 다른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극명한 차이를 나타낸 경우는 많지 않았다. 우리는 왜 그린스펀의 한마디에 버금가는 무게감 있는 전망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가. 국제관계가 복잡하고 유가 등 내외 불확실성이 전문가들의 전망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하지만 신뢰를 주는 지수는 경제주체들에게 미래를 지혜롭게 대비할 수 있는 훌륭한 시금석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직도 그린스펀의 한마디처럼 신뢰감 있는 전망치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 무리한 바람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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