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외국자본 경영간섭 度 넘었다] <하>우리도 방어수단을 열어주자

한국판 '엑슨-폴로리오' 도입을<br>美, 국가안보 영향줄땐 기업인수 금지 마련<br>한국 자사주 매입외엔 별다른 방어책 없어

‘경제안보를 위한 한국판 엑슨플로리오(Exon-Florio) 규정을 도입하자.’ 지난 86년 일본 후지쓰(Fujitsu)사는 미국의 반도체 회사인 페어차일드(Fairchild)를 인수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의회는 정보ㆍ감시 분야의 핵심기술을 갖고 있는 페어차일드를 외국에 넘길 수 없다며 인수 자체를 무산시켰다. 88년 미국 의회는 ‘외국인이 미국 기업의 인수합병(M&A) 또는 실질적인 지배로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이 인수를 금지할 수 있다’는 엑슨플로리오 규정을 도입했다. 이후 2001년까지 14년 동안 1,387건의 외국인 기업인수에 대해 심사를 했고 8건은 투자철회, 2건은 대통령 권한으로 투자를 금지시켰다. 자국의 주요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심사규정은 미국 외에도 일본ㆍ프랑스ㆍ호주ㆍ캐나다ㆍ뉴질랜드ㆍ멕시코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이 도입하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은 삼성전자나 현대차ㆍ국민은행 등 주요 기업의 지분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의 적대적 M&A에 대응하기 위한 ▦차등의결권 제도 ▦백지식 우선주 ▦독약처방 ▦황금낙하산제도 도입 등은 아직 요원하다. 상법과 증권거래법을 고치고 다시 주총 결의를 통해 정관을 바꿔야 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엑손플로리오 규정은 경제안보의 기본=호주 정부는 2001년 다국적 기업인 셸(Shell)이 자국의 석유기업인 우드사이드(Woodside)를 적대적으로 인수하는 것을 무산시켰다. 우드사이드는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천연자원 회사로 호주 북서쪽의 석유와 천연가스 채굴권을 갖고 있었다. 셸은 우드사이드 지분을 56%로 늘려 지배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호주 정부는 다국적 기업인 셸이 호주 천연자원 개발권을 국가적 이익 차원에서 개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불허했다. 캐나다 정부도 80년대 들어 외국자본이 석유기업 지분의 70%,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자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캐나다는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자국 기업이 석유산업의 지분율을 50%까지 높이겠다는 국가에너지프로그램(National Energy Program)을 만들었다. 송종준 충북대 법학과 교수는 “외국자본의 적대적 M&A에 대해 사전ㆍ사후적으로, 그리고 포괄적으로 심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마련이 필요하다”며 “외국인투자촉진법의 입법적 보완만으로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창을 줬으면 방패도 줘라=미국은 엑슨플로리오 규정을 도입한 후 연방법과 각 주법으로 적대적 M&A에 대한 각종 방어장치를 도입했다. 때문에 80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에서 발생한 적대적 M&A는 371건으로 전체 M&A의 0.4%에 불과하다. 미국 기업들이 가장 많이 도입하고 있는 경영권 방어장치는 ‘백지식 우선주’ 규정으로 이사회가 경영권 방어 등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주주 동의 없이 신주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영권을 빼앗기 위해 이사를 중도 해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황금낙하산 규정을 도입한 회사도 95년 상장기업의 53%에서 2003년 말에는 73%로 크게 늘었다. 미국 인디애나주 등 일부 주에서는 내국인 주주의 절반이 찬성하지 않으면 외국인이 경영권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정관에 넣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본시장 개방 이후 외국자본에 경영권을 공격할 수 있는 창을 줬다면 이제는 기업들에 ‘방패’를 줄 차례라고 주장한다. 외국자본은 다양한 전략을 통해 공격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은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자사주 매입’ 외에는 별다른 방어수단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골드만삭스의 경우처럼 미국 기업은 자사에 대한 적대적 M&A는 사전ㆍ사후적으로 철통같이 막아두고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자유자재로 공략하고 있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미국 정부는 월가 투자자들(금융자본)이 주장하는 적대적M&A의 무제한 허용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며 “해외자본에만 일방적으로 열려 있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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