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고(苦)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실체가 금명간 노출된다. 7,000여개에 이르는 광범위한 모집단에 대해 갤럽이 실시한 중소기업 실태조사는 직접방문 형식으로 이뤄졌다. 실태가 그만큼 세부적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에 맞춰 민관 공동의 협의채널을 가동했다. 당장 다음주부터는 중소기업 대책을 둘러싼 부처간ㆍ민관간의 활발한 의견교환이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의 관심은 구조조정에 쏠려 있는데 ‘과거와 같은 일괄 퇴출은 없다’는 게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거래소 상장 및 코스닥 등록 기업 727개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지난 2002년 ‘중(中)위험’으로 분류됐던 중소기업의 38.6%, ‘저(低)위험’이던 중소기업의 16.9%가 지난해에는 ‘고(高)위험’ 그룹에 포함됐다. 중소기업의 신용위험이 시간이 흐를수록 빠르게 나빠지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이번 실태조사에서 말 그대로 ‘그물망 점검’을 벌였다. 보증기관으로부터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CBO) 형태 등으로 보증을 받은 기업은 실시간별로 현금흐름을 점검했다. 일반 은행들의 여신기업들도 신용등급별로 자금상황을 체크했다. 업종별 애로사항도 점검, 사양산업에 대한 대책도 마련할 방침이다.
다음주부터 본격화할 정부의 대책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노무현 대통령이 중소기업 대표들과의 면담에서 강조했듯 회생이 힘든 기업은 과감하게 정리할 계획이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호흡기만 떼면 죽을 기업은 안락사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일정 규모 이상은 주관은행을 통해 은행권 공동으로 하되 소규모 기업은 주거래 은행 단독으로 최하위 신용등급을 우선 정리 대상으로 삼을 예정이다. 각종 인수합병(M&A) 유도책도 강구 중이다.
다만 중소기업의 80% 이상이 소상공인이라는 게 정부가 안고 있는 고민거리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대책이 정말로 필요한 것이 이들인데 현실적으로 구조조정이든 정책적 지원이든 쉽지 않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M&A나 업종 전환 유도 등도 힘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회생 가능한 기업에 대한 대책은 의외로 어렵지 않게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어차피 뾰족한 대책이 없고 자금과 창업지원 등 기존 대책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대책의 초점이 결국 부실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