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벌어진 IT 업계의 유통 사기사건으로 코스닥시장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기존 제도의 순기능을 철저히 악용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특징은 관련 기업의 대주주와 경영진이 최근에 바뀐 기업들로서 수치상으로는 매출 증가를 포함, 금년도 반기 흑자를 시현했던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보호예수기간 중 예약매매를 통해 인수한 기업의 신용을 담보로 자금을 끌어들인 후 대주주가 이를 횡령했다는 점이 논란과 의혹의 핵심이다. 관련 부도기업과 거래관계에 있는 몇몇 기업들이 추가 위험에 빠져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련의 거래를 거쳐 최종 부도에 이르는 과정까지 이러한 사실이 제대로 공시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은폐의 의혹이 많다. 문제는 이번 사건을 둘러싼 해결의 접근방식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공개기업이 최대주주의 사금고화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등록 당시 최대주주 등에 대한 자금대여, 담보제공 및 채무보증문제를 해소하도록 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가 등록 후 재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사회에 대한 철저한 감시 절차가 필요하다. 앞서 발표된 코스닥시장 안정화 방안 중, 최대주주변경 시 인수자에 대한 상세 정보의 공시는 일부 최대주주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제어해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일반 투자자들의 보호를 위해서는 최대주주와 경영진을 상대로 민사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방안의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이다. 집단소송제와 주주대표소송이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활용될 수 있도록 국회와 관련 감독당국은 신중하게 제도의 보완과 도입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아마도 이번 사건이 코스닥증권시장에 남겨준 가장 큰 피해는 관련 당사자들이 기업인수합병(M&A)제도를 악용함으로써 이 제도를 원활히 하려는 최근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M&A 제도는 코스닥등록기업 입장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코스닥시장에 등록된 기업의 상당수가 단편적인 기술소유기업에 불과하거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선두 기업을 중심으로 상위의 기업만이 살아남는 냉엄한 현실에서 각 기업의 자구 차원에서라도 코스닥등록기업의 M&A는 필요한 제도이며 활성화돼야 한다. 창업 기업주가 모두 최고경영자(CEO)가 돼야 될 필요가 없으며 자금력과 기술이 더 우수한 기업의 '자발적 일부'가 돼서 전세계의 동종 기업과 경쟁을 준비해야 될 시점이다. 기존의 중소기업이 안고 있는 유통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벤처ㆍ중소기업의 규모를 지향한 M&A는 필요하다. 또 소극적 의미에서 M&A는 기업들의 원활한 퇴출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번 부도사건과 관련된 추가적인 잠재부실의 규모에 대해서는 차차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선의의 흑자기업이 이번 사건과 관련돼 겪는 일시적 유동성 문제에 대해서는 관련기관의 적절한 대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업성과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차제에 과감히 정리하는 긍정적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다만 퇴출의 방식이 실제 부도로 연결되기 전에 M&A와 같은 간접적인 방식을 취하는 것이 해당 기업은 물론이요 투자자들의 고통을 극소화하는 방안이라고 본다. 현재 시점에서 국내기업 M&A의 가장 큰 걸림돌로는 주식교환에 따르는 이중과세문제가 장애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M&A 제도의 보완책을 제시해야 할 시점에서 일부 제도의 훼방꾼들로 인해 제도도입 자체가 늦어져서는 안된다. 사기 어음을 받아 당장 피해를 보고 있는 일부 기업만이 아니라 어려운 영업환경과 자금난에 시달리는 현재와 미래의 코스닥기업 전체에 잠재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관련 감독당국은 심각하게 알아야 한다. 이번에 발생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의 보완은 지속하되 이번 사건 때문에 정작 필요한 제도개선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장범식<숭실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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