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신용도 땅에 떨어진' 빅3 신용평가회사

모기지상품등 평가 오류로 금융위기 재촉 비난<br>美·EU등 각국 감독기관들 규제 조치 강화 추진<br>'글로벌 금융시장 문지기'로 신뢰회복 노력 절실



1990년대말 무디스나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의 평가담당자들이 어느 나라를 방문했다는 첩보가 금융시장에 전달되면 그 나라는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저승사자라는 악명을 들었다. 그만큼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컸다는 의미다. 금융시장은 믿음을 먹고 산다. 그 믿음은 신용이라는 무형의 자산으로 나타나고, 이를 판정하는 기관이 신용평가회사다. 무디스와 S&P는 뉴욕 월가의 양대 산맥을 이루며 글로벌 시장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이들의 권력은 무소불위였다. 이들의 매긴 등급에 따라 거래가 성사되기도 때로는 결렬되기도 했다. 등급이 강등된 은행을 추락하거나 심지어 파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S&P, 무디스, 피치등 3대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의 신용이 최근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파생상품의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해 금융위기를 재촉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신용평가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뉴욕 월가의 금융감독기관인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0개월 간에 걸쳐 신평사의 신용평가 과정을 조사했고, 최근 내놓은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신용평가사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 평가에서 심각한 오류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토대로 SEC는 물론 각국 감독기관들은 신용평가회사들의 평가에 규제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SEC의 이번 조사는 각종 계약서류는 물론 200만 건이 넘는 이메일과 인스턴트 메시지 등에 대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크리스토퍼 콕스 SEC 위원장은 “조사 결과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했다”면서 “투자자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 공개, 허술한 평가 절차 감독, 이해 충돌 사안에 대한 무관심 등이 만연했다”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어떤 신평사에서는 내부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애널리스트 사이에 이해 충돌(interest conflict)의 상황도 빚어졌다. 또 다른 회사는 등급 산정에 참여하는 핵심 관계자가 이해 당사자인 채권 발행사와 만나 수수료를 논의하는 것을 방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보고서는 또 신용 평가 과정을 문서화하지 않았거나 내부적인 감사 절차 장치도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신용 평가회사 내부에서도 자산담보부증권(CDO) 등의 등급 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SEC 보고서에 따르면 신용 평가에 참여하고 있는 한 직원은 이메일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평가 모델이 CDO에 내재된 위험을 절반도 채 포착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상사에 보낸 이메일에서 “우리는 점점 더 큰 CDO라는 괴물을 만들고 있다. 가망 없는 계획이 실패로 드러나기 전에 회사를 떠나는 편이 낫다”고도 말했다. SEC보고서는 무디스가 컴퓨터 오류로 10억 달러에 달하는 고정비율부채증권(CPDO)에 등급을 잘못 매겼다고 실토한 뒤 관련 직원에 대한 징계 계획을 발표한 직후 나왔다. S&P도 컴퓨터에서 등급을 높이는 오류가 발견됐다고 인정했다. 신용 평가회사들은 신용위기를 불러온 핵심 주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개인의 빚이나 채권은 매매가 힘들지만 S&P, 무디스, 피치는 이를 증권으로 바꿔줌으로써 손쉽게 거래가 이뤄지도록 했다. 이들 증권에 안정성을 보증하는 도장을 찍어 준 것이 신용평가회사다. 신용평가회사의 평가가 없었다면 투자자들은 이 같은 금융상품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좋은 점수를 줬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위험도가 높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CDO를 대량으로 사들였다. 지난 10년간 모기지 관련 상품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들 파생 상품은 위험을 전세계 투자자들에게 골고루 분산시킬 수 있었고 또 다시 막대한 모기지 대출을 가능하게 하는 순환고리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최근의 신용시장 왜곡이 부풀어오른 것이다. 3대 신용 평가회사가 신뢰에 타격을 입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1년 엔론 부정회계 사건 때에도 채권투자로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이 “엔론의 수상한 회계상황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다”며 신용평가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신용평가 회사들은 “신용 등급은 단지 의견에 불과하다”면서 “고객이 제공한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등급이 매겼을 경우엔 책임이 없다”고 강변했다. 이번에도 신평사들은 엔론사태 때와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고객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경우 그들의 의견이 틀리는지를 알수 없고, 따라서 평가 잘못은 어쩔수 없는 결과였다는 것. 또 그들은 평가한 상품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모니터링하고 등급을 내릴 필요가 있을 때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것 뿐이라라고 변명하고 있다. 무디스는 컴퓨터 오류에 대해 자사 직원이 이를 은폐하기 위해 고의로 평가 방법을 조작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무디스의 한 주주는 “만약 누군가가 이들의 부정행위나 부주의했다는 드러낸다면 무디스는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용 평가회사들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서는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SEC는 파생 상품을 설계한 애널리스트가 등급산정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거나 등급 평가에 참여한 애널리스트가 수수료 협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유럽에서도 규제책이 논의되고 있다. 최근 유럽의 27개국 재무장관은 EU의 정책 입안자에게 신용 평가사의 비즈니스 모델과 활동을 조사하는 권리를 부여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신용 평가회사는 금융시장의 문지기 역할을 한다. 이들의 결정에 따라 국가든, 기업이든 금융 시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 하지만 그동안 문지기는 그동안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시장의 문을 열어줬고, 무자격자들이 바이러스처럼 글로벌 금융시장을 병들게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SEC등 금융감독당국의 규제에 앞서 S&P, 무디스등이 땅에 떨어진 신뢰를 되찾을수 있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