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사는 현실세계는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잘 해내는 것이 인간 삶의 의무일 수 있고, 적당한 스트레스는 건강에 활력소가 된다고도 하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 어린 자녀들에게 입시라든가 어려운 교우관계가 주는 스트레스는 이미 과도한 수준이다.
청소년들에게서 '스트레스성' 혹은 '심인성'으로 진단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들이 늘고 있는 것도 괜한 현상은 아니다. 어린 나이에 성적과 입시 교우관계 등으로 짧아도 수년동안 장기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중고생 자녀들 가운데는 신체증상 뿐 아니라 신경 자체가 예민해져서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분노와 답답증을 앓는 경우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스트레스는 마침내 소외감, 폭력에 대한 공포, 성적에 대한 공포감으로 전이되어 우울증 조울증, 심하면 가벼운 분열 증상으로까지 발전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정신적 문제로 전문적 상담이 필요한 학생의 수는 거의 25~30% 정도까지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마음이 장기적으로 불안하고 이를 위안 받을 수 있는 대안이 충분치 못할 때, 아이들은 불면에 시달리고, 짜증이 늘어 교우관계가 원만치 못하게 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거나 늘 누군가에게 의지하려 하고, 혼잣말을 하며, 잘 놀라고, 불안하여 다른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등 가벼운 자폐적 성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신체 증상으로는 잦은 두통 혹은 편두통을 호소하고, 먹기를 거부하거나 지나치게 먹고, 머리가 뜨겁고, 피로감을 느끼고, 늘 들떠있어 공부에 집중이 안되고, 건망증이 생기고, 코피를 자주 흘리며, 빈혈이나 이명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근심 걱정으로 마음의 칠정(七情)이 상할 때는 오장육부에도 손상이 오는데, 특히 심(心) 비(脾) 신(腎)의 부조화가 초래되어 혈(血)과 정(精)이 위축되므로 정신적인 문제와 신체 건강의 문제가 함께 생기게 된다.
스트레스로 심약해진 아이들에게 맞는 한방의 전통 처방은 귀비탕(歸脾湯)이다. 소화를 돕고 뱃심을 두둑하게 해주는 인삼 황기 백출 복령 감초 대추, 조혈을 돕는 당귀 인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신경을 진정시키는 용안육 원지 산조인 목향 등이 기본이다. 이 외에 사람의 체질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신체증상들을 고려하여 변향부자 숙지황 건강 지유 방풍 승마 등이 가미되는 경우도 있다.
귀비탕은 불안증을 가라앉히는 효능이 있어 쉽게 놀라고, 헛것을 보거나 가위 눌리고, 두뇌활동이 둔해지는 경우에도 쓴다. 환경변화나 새로운 일 등으로 마음이 불안해진 성인들에게도 우황청심환보다 더 나은 진정작용을 나타내는 처방이다.
이은주ㆍ대화당한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