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재도 확인도 눈대중으로 화물 한쪽으로 쏠리면 속수무책
화물업체 말만 믿고 출항 일단 실으면 확인 불가능
미끄러운 화물칸 바닥에 대부분 제대로 고정 안해
선박 균형위해 꼭 필요한 평형수 연료부족 의혹도
300여명의 사망·실종자를 낸 세월호가 1,500만원에 불과한 화물 자동적재 안내 프로그램인 '로딩마스터(또는 로딩플랜마스터)'도 없이 눈대중으로 화물을 실었다가 대형 참사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로딩마스터는 화물을 선적할 때 좌우 균형을 맞춰 자동으로 위치를 정해주는 프로그램으로 밸런스(균형) 유지가 중요한 항공기나 선박 등에는 필수적인 장치로 꼽힌다. 중량을 따지지 않고 화물을 주먹구구로 실으면 선박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고 이미 기운 선박은 작은 파도나 방향전환 등 미세한 조작실수에도 큰 사고를 낼 수 있다.
20일 서울경제신문이 범정부사고대책본부와 해경, 연안 여객업계 등을 상대로 취재한 결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본선이나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에는 로딩마스터 프로그램이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세원 한국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외항선박에는 100% 설치하도록 돼 있는 로딩마스터가 세월호 본선에 설치돼 있지 않았다"며 "로딩마스터 없이 화물을 눈대중으로 대충 싣게 되면 한쪽으로 무게가 쏠려 기운 채 출항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화물을 균형 있게 싣지 못하다 보니 세월호는 인천항에서 출항할 때부터 이미 3~5도 기울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파도 등 변수가 많은 장거리 외항선박들의 경우 로딩마스터 설치가 의무화돼 화물적재 단계부터 균형 있게 짐을 실어 최적의 밸런스를 유지하도록 돼 있다. 그래야 좌우 균형이 유지돼 심한 파도가 쳐도 곧바로 복원력(오뚝이처럼 배의 중심이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힘)이 생겨 안정적 항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세월호처럼 내항을 오가는 연안 여객선들은 로딩마스터 설치 규정도 없고 영세성 때문에 이를 설치해 이용하는 내항 선박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로딩마스터 구입 가격은 1,500만원에 불과하다. 선박안전과 직결되는 장비인데도 영세업체이다 보니 이 장비를 구입하지 않고 화물을 적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세월호가 1,500만원을 아끼려다 300여명의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킨 셈이다.
세월호는 화물을 실을 때 자체 로딩마스터를 이용하지 않고 W통운에 하청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의 한 해운업체 대표인 정모씨는 "화물을 적재할 때는 W통운 측에서 사람 2명이 나와 화물적재 위치 등을 지정해준다"며 "그러나 로딩마스터 등 장비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화물이 균형 있게 실렸는지 최종 확인은 세월호 1등 항해사가 담당했다. 하지만 로딩마스터만 있으면 화물이 균형 있게 배치됐는지를 자동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이게 없다 보니 화물적재 업체가 제대로 실었다고 하면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1등 항해사가 재확인을 하고 싶어도 이미 적재된 화물을 다시 끄집어내지 않고서는 현실적인 방법이 없어 대부분의 화물적재 업체 말만 믿고 출항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화물적재가 어설프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이 보고한 것과 실제 화물 적재를 담당하고 있는 하청업체인 W통운의 적재 중량이 다른 데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청해진해운은 사고 당시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이 실려있다고 밝혔지만 W통운측은 차량과 컨테이너 등의 무게가 3,608톤이라고 밝혀 큰 차이를 보였다. 3,608톤은 승객과 승무원 등 탑승자 무게 30톤을 제외한 것이지만, 세월호가 감당해 낼 수 있는 최고치인 3,900톤과 맞먹는 수준으로 꽉 채운 셈이다. 세월호가 실을 수 있는 차량도 150대지만 사고 당시 세월호에는 승용차 124대, 소형 트럭 22대, 대형트럭 34대 등 180대가 실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형트럭은 대부분 4.5톤 이상의 중형차량으로 50톤 이상 대형트레일러도 3대나 실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영세한 해운사들이 승객보다는 화물에서 이익을 내고 있는 구조"라며 "이렇다 보니 화물을 최대한 싣고 실제 보고는 축소해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세월호가 더 많은 화물을 싣기 위해 배의 균형을 위해 배 밑바닥에 필수적으로 채우게 돼 있는 평형수와 연료유 등을 규정대로 채우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장범선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연료유가 550톤 가량 실려 있어야 하는데, 애초에 200톤 정도로 밖에 싣지 않았던 것 같다"며 "평형수를 줄이는 대신 화물을 더 실은 게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화물적재 전 과정이 부실투성이로 진행되다 보니 세월호는 인천항에서부터 무게중심이 3~5도 기운채 출항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무게 중심이 기운 상태에서 출항하다 보니 사고 지점 가까이서 세월호의 기울기가 가속화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세원 교수는 "배가 3~5도 기울어져도 타고 있는 승객들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화물칸 적재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쪽으로 쏠림현상이 가속화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화물칸 바닥은 철판 위에 페인트칠을 해 놓고 있어서 상당히 미끄럽기 때문에 고박(라싱·lashing)을 제대로 했다고 해도 이미 기운 선박이다 보니 복원력이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화물이 쏠렸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세월호에 탑승했다가 구조된 서희진(54)씨는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지난 15일 오후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 전북 군산 인근 바다를 지나던 배가 왼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었다"며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밖으로 나가 확인했지만 파도는 잔잔했다"고 말했다. 배가 크게 흔들릴 정도의 기상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세월호의 기울기는 점점 기울고 있었다는 얘기다.
인천항운노조에서 근무했던 김모(70)씨는 "큰 배에 자동차와 컨테이너를 실을 때 자동차는 가격이 비싸 배 바닥에 자동차 바퀴를 연결하는 라싱고리가 있어 여기에 제대로 걸고 있지만 컨테이너는 네 귀퉁이에 고정시키는 핀을 고정시켜야 하는데 대부분 그냥 적재하고 만다"면서 "이번 사고도 컨테이너를 제대로 고정시키는 일을 하지 않아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W통운 관계자는 "세월호에는 2명의 감독관이 파견 나가 화물 하나하나를 꼼꼼히 점검했기 때문에 상차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없다"고 해명했다.
화물을 비대칭으로 선적하게 되면 배가 한쪽으로 쏠리게 되고, 이미 기운 선박은 작은 파도나 방향전환 등 미세한 타 조작 실수에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맹골수도 해역은 국내에서 조류속도가 두번째로 빠른 곳으로, 여차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지점이다. 이미 기운 세월호에 조류나 파도 등 외력이 조그만 가해져도 전복 등의 큰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컸다는 것이다.
세월호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를 운영하는 선주, 선장, 감독기관만 눈감고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