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의 배럴당 40달러선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2차 유가하락 사이클이 시작됐다. 올 3월 중순 이후 국제유가 반등에 미국 셰일업계가 생산을 중단했던 시추공을 다시 열고 반격에 나서자 사우디아라비아가 생산량을 늘리면서 석유패권을 둘러싼 '치킨게임' 2라운드가 펼쳐지는 모양새다. 공급과잉에다 중국 경기둔화, 달러화 강세 등의 악재가 산적해 있어 최악의 경우 배럴당 15~20달러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배럴당 30달러대는 시간 문제=1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9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1.82달러(4.3%) 급락한 배럴당 40.80달러에 마감했다. 이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2일(40.46달러) 이후 최저치다.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 북해산브렌트유도 1.65달러(-3.4%) 떨어진 47.1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국제유가 급락은 예상과 달리 미 에너지정보청(EIA)이 지난주 기준 미 원유 재고가 262만배럴 증가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는 시장 전망치인 60만~110만배럴 감소와는 정반대의 결과다. 시장조사 업체인 IHS의 대니엘 예긴 부회장은 "중국이 주도하는 원자재 슈퍼 사이클의 종말을 보고 있는 중"이라며 "공급과잉에 국제유가가 금융위기 당시 저점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조만간 여름철 휴가가 끝나면서 휘발유 수요가 줄어드는데다 정유업체가 연례 정기보수에 들어간다는 점도 국제유가에 악재다. 크리스 메인 씨티그룹 원유 전략가는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로 떨어질 확률이 90%"라고 말했다. 미국 컴벌랜드 자문사의 설립자인 데이비드 코토크는 "국제유가가 바닥을 쳤다는 증거가 없고 (1999년 초반 이래 최저 수준인) 배럴당 15∼20달러로 쉽게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CNBC의 전문가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2%는 올 9~10월 WTI 가격 전망치로 30~40달러를 제시했다. 헤지펀드 등 투자가들도 유가 약세에 베팅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WTI 가격 상승에 베팅한 선물계약 수는 2010년 9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석유패권 전쟁 2라운드 개막=당초 전문가들은 지난해 6월 이후 유가 추락에 미 셰일업체들의 원유 생산량이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셰일업체들이 기술개발로 생산 단가를 낮춘데다 지난 6월 유가가 60달러까지 반등하면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930만배럴로 1972년 이후 최고치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는 증산을 통해 미 셰일업체의 숨통을 또다시 조이고 있다. 씨티그룹은 사우디의 하루 석유 생산량이 올해 1,020만배럴에 이른 뒤 내년에나 1,000만배럴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사우디의 석유 수출량은 5월 하루 694만배럴에서 6월 737만배럴로 치솟았다. 재정적자 증가 등 경제난에도 미 셰일업체부터 고사시키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석유전쟁에는 러시아도 가세하고 있다. 루블화 가치 추락으로 발생한 환차익이 유가하락에 따른 손실을 메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올해 말까지 10만배럴 늘면서 1,110만배럴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가스프롬 자회사인 가스프롬네프트의 바딤 야코블레프 수석 부사장은 "유가하락에도 글로벌 석유 산업에 아직 충격이 오지 않았다"며 "사우디가 새로운 유가 수준으로 셰일업체들의 저항력을 시험하려 하고 있고 러시아의 생산량도 증가하면서 유가가 배럴당 25~30달러로 하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중소 셰일업체들의 도미노 파산으로 미국의 생산량이 감소할 때까지 2차 석유전쟁과 유가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