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지갑이 열려야 산다


최근 만난 한 백화점 임원에게 요즘 영업이 어떠냐고 묻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백약이 무효네요…." 그래도 여름 휴가에 해외 여행을 많이 가던데 백화점을 찾는 부유층은 소비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답했다. "해외 여행이 오히려 백화점에는 치명적이죠. 가서 여행만 하나요. 물건도 사죠. 그러면 백화점에는 더 안 오게 되지요."

내수 경기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추석 기간 동안 주요 백화점은 지난해보다 2~5%대 매출 상승에 그쳤고 대형마트는 추석 선물세트 매출이 2~4%가량 줄어 명절 특수 사상 처음으로 매출이 감소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 불황에 도대체 호기롭게 지갑을 여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

백화점 임원의 말대로 불황이라지만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은 넘쳐난다. 이번 추석연휴에 57만명이 해외 여행을 예약해 지난해 추석보다 7.6% 늘어났다. 주요 여행사들에 따르면 올 여름휴가 때도 해외를 찾은 여행객수가 2년 전에 비해 2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프로야구는 지난 2일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단일 시즌 7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입장 수입도 올 들어 현재까지 600억원을 올려 지난해보다 15%가량 늘었다. 각 구단이 가족석, 연인석 등 프리미엄 좌석을 늘리면서 야구장 입장료가 최하 7,000원에서 최고 6만원까지 올랐지만 투입 비용 대비 효용가치가 높은 놀이문화로 인정받고 있다.


계층간 알맞은 소비 시스템 무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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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계는 비교적 저렴한 극장 입장료로 가족이나 연인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이점에 힘입어 유례없는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영화 '도둑들'은 개봉 70일 만인 2일 누적관객수 1,302만명을 기록하며 '괴물'을 넘어서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개봉 21일 만인 3일 누적관객 700만명을 넘어서며 '도둑들'의 바통을 이어받을 태세다.

불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화ㆍ예술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가 분출된 점은 다행스럽지만 또 한편으로는 작은 돈으로 오랜 즐거움을 누리는 곳에 푼돈만 돌고 있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김현 의원에게 3일 제출한 '풍속영업소 영업현황'자료를 보면 소비자들이 놀고 마시고 즐기면서 불황의 시름을 잊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많은 자영업자가 도산하는 와중에도 풍속업소 중 비중이 가장 큰 노래연습장은 9월 기준 4만8,476개로 2010년 초보다 8%(3,598개) 늘어났다. 특정 업체와 계약을 맺어 해당 게임만 제공하는 게임업체와 일반 PC방도 같은 기간 14~16% 늘었으며 룸살롱 등이 포함되는 유흥주점이나 단란주점도 4%대 증가했다.

각 경제계층이 자신의 자리에서 골고루 알맞게 소비와 투자를 해야 경제의 피 돌기가 건강하게 도는데 우리는 시스템이 무너져가고 있다. 중산층은 하우스푸어ㆍ워킹푸어ㆍ에듀푸어ㆍ웨딩푸어 등 각종 푸어족이 넘쳐나 내수 소비를 떠받치기에는 힘이 부친다. 중산층의 구매력이 떨어지면 기업도 투자와 고용을 줄이게 되면서 경기가 둔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대기업들은 현금자산을 쌓아놓고 투자는 하지 않으면서 경영환경이 악화될 경우 인위적 구조조정도 할 수 있다며 불안감을 표출한다. 부자들도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에 발목 잡혀 있는가 하면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돈을 움켜쥐고 쓰지 않거나 아예 해외로 나가버린다.

내수 살릴 일자리 묘책 내놔야

대선 레이스에 나선 주자들이 너도나도 통합을 부르짖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계층 간 통합을 유도할지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공약이 보이지 않는다. 빈곤층이 언젠가는 부의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중산층이 될 수 있고 중산층도 부유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다른 계층과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도 시원찮을 판에 분노만 부추기는 포퓰리즘만 난무할 뿐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경제민주화의 요체는 결국 '일자리'라고 강조하고 있다. 일자리를 늘려야 내수가 살고 소비가 일어나야 기업투자도 확대되는 등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이어질 수 있다. 대선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지만 계층 간 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일자리 묘책을 내놓는 후보가 제발 나와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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