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할아버지의 33엔, 할머니의 1000회


소년은 수업이 끝나면 종종 할아버지 방으로 찾아가곤 했다. 담배 연기 가득한 그곳엔 공포스러우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일본에 끌려가 탄광에서 고초를 겪었던 일. 돈을 벌 수 있다는 일경의 말에 속아 일본에 건너간 할아버지는 규슈의 한 광산에서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뼈가 바스러지도록 일을 했다. 기자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올해로 10년. 기억조차 희미해져가던 할아버지가 생생한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지난 9월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로부터 할아버지가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로 결정됐다는 통지서가 날아온 것이다. 33엔. 할아버지가 징용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을 하며 받지 못한 돈이다. 이 액수는 일본이 우리나라 정부에 제출한 노무자 미수금 자료에 근거한 것. 당시 1엔을 2,000원으로 환산한다는 보상 기준에 지급될 돈은 6만6,000원이지만 미수금이 100엔 이하면 100엔을 적용한다는 규정에 따라 보상액은 20만원으로 결정됐다. 할아버지가 떼인 돈이 이것뿐이겠냐만은 기록으로는 더 이상 확인된 것이 없다. 일제가 패망한 지 두 세대가 지났지만,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고 있다. 이틀 후면 위안부 할머니들은 또 다시 서울 중학동 일본 대사관 앞에 모인다. 오는 14일은 더욱 의미 있는 날이다. 수요집회가 1,000회를 맞는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외침은 20년 전 첫 집회를 하던 그날처럼 일본의 철저한 외면과 우리 정부, 우리 사회의 무관심 속에 허공에 흩어져버릴 것이다. 이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일본 대사관 앞에 '위안부 평화비'를 설치하려 한다는 소식에 일본 정부는 무례하게 '설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갈망이 더욱 커져간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기자의 할아버지처럼 깊은 회한을 남긴 채 기억의 무대 저편으로 사라져서는 안 될 일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총 234명 중 생존자는 이제 65명에 불과하다.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와 보상, 할머니들이 생전에 웃을 수 있는 일이 이뤄지기를 간절하게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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