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불가능 우려고조/“실물경제 워낙 탄탄”/‘전면위기’는 없을듯동남아, 한국 다음엔 일본인가. 아시아를 휩쓸고있는 금융위기가 일본마저 쓰러뜨릴지 세계금융계의 관심이 일본으로 집중되고있다. 일본 4대 증권사인 야마이치(산일)증권사의 폐업으로 25일 일본주가와 엔화가 폭락사태를 맞고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국제금융시장에서 일본계 은행들의 단기자금 가산금리가 0.45%로 치솟는 등 일본금융기관의 해외차입은 차질을 빚고 있다. 이에 따라 동남아시아 금융위기의 도미노 붕괴사태가 아시아 경제의 맹주인 일본에 상륙했다는 성급한 판단마저 없지 않다.
로렌스 서머스 미 재무차관은 25일 『일본이 한국처럼 국제통화기금(IMF)의 금융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야마이치증권의 경영파탄사태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고 지적, 일본의 금융위기로 보는 미국측의 착잡하고 불안한 심정을 나타냈다.
이처럼 일본 금융시스템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최근 금융기관들의 잇따른 도산이 일본 금융계의 고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됐기 때문. 따라서 앞으로 사태는 일 금융당국이 통제할수 없는 지경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야마이치증권의 도산을 일금융위기 본격화의 조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 회사의 부실 규모가 일증권시장 사상 전후 최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총 40조엔에 달하는 일본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을 정리하기가 암담한데다 금융빅뱅의 추진이 이번 사태로 탄력이 붙음에 따라 도태되는 금융기관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일본 금융산업이 되살아나겠지만 단기적인 대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일금융업에서 새살이 돋아나기까지 고통이 엄청날 것으로 전망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금융기관들의 고질적인 불투명한 거래관행으로 지적되고있다. 파산한 야마이치증권은 숨겨온 부외부채 22억달러가 불법 주식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결국 일본 금융위기의 본질은 태국,인도네시아 및 한국과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실물경제가 워낙 탄탄하기 때문에 일부 금융기관의 부도사태가 금융권전체의 위기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외환보유고가 2천2백38억달러로 세계최대규모인데다 정부의 우편예금이 2백31조엔(1조8천3백억달러)에 달해 정치권만 합의한다면 언제든지 부실채권정리에 동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경상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라는 점에서 외환위기의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공공자금 투입등 일정부의 지원대책에도 불구, 부실 금융기관의 연쇄도산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특히 미쓰즈카 히로시(삼총박) 대장성장관은 『부실기업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금융기관에 대한 지원은 제한적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무디스사로부터 신용등급을 「불량」으로 판정받은 도쿄생명보험과 「매우 불량」판정을 받은 교에이, 치요타, 다이햐쿠, 도호생명보험등이 요주의 금융기관으로 지목받고 있다. 또 증권회사가운데 야마이치증권의 유일한 자회사인 다이헤이요 증권을 비롯 야마타네, 코스모, 다이이치증권 등 최근 주가가 폭락한 중형 증권사들의 부도가능성이 거론되고있다.
특히 외국투자자들은 『일본 금융시장이 한번 피냄새를 맡았기 때문에 앞으로 보다 큰 목표를 찾을 것』이라며 연속 부도사태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일본마저 금융위기의 불길에 휩싸임에 따라 동아시아 전체가 금융산업 재편의 도마에 오르는 일대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문주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