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4월8일, 지금의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자리에서 200여명의 군대가 해산식을 가졌다. 장교와 병사 전원이 조선인으로 구성된 이 부대는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 일제가 대한제국군을 해산(1907년)한 직후 황실 보호와 퇴직군인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만든 군대다. 창설 당시 병력은 837명. 1만명 가까운 대한제국군을 해산한 일제는 실업자로 전락한 한성 내 한국군의 의병 합류를 막고 고종황제를 보호, 감시할 목적으로 대대급 조선보병대와 중대급 조선기병대를 묶어 근위대로 남겨뒀다. 한일병탄 이후 기병대가 없어지고 고종과 순종황제의 승하로 보병대대도 중대급으로 축소됐으나 아침이면 광화문 거리를 구보하는 조선보병대는 옛 군대의 추억과 함께 한성의 명물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렇다 할 직업이 없던 시대여서 병사 모집에는 10대1의 경쟁이 붙었다. 보통학교 이상 졸업자로 구성된 고학력 군대였으나 조선보병대는 태생적으로 총을 쏠 수 없는 군대였다. 당시 민족계열 일간지에는 '세계 유일의 평화군대'라는 자조 섞인 기사도 종종 실렸다. 해산 이유는 경제난. 세계 대공황의 여파 속에 예산절감 차원에서 없어졌다. 실업자가 된 병사들은 경찰이나 헌병보조원으로 특채됐다. 조선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받았던 군대가 일제의 주구로 변신했다는 점이 씁쓸하다. 조선보병대사령부 자리에는 또 다른 수탈기관이 들어섰다. 체신청 보험사무소가 자리잡아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약 1,100만건의 간이생명을 반강제로 판매해 민초의 주머니를 긁어갔다. 조선보병대가 사용했던 한식 건물 청헌당은 1967년 정부종합청사를 신축할 때 태릉 육군사관학교로 옮겨졌다. 조선보병대는 해산 당시 202명의 초미니 군대였으나 중장만 두 명이 있었다. 병사에 비해 과도한 장성 숫자는 언제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