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부실과의 전쟁' 카드사·저축銀도 '발등의 불'… 돈맥경화 불가피

"연말까지 부실채권 줄이자" 금융권 목표 맞추기 안간힘<br>대출 심사 등도 한층 강화… 中企 자금난 부추길 수도<br>건설경기 침체 지속에 가계부채까지 맞물려<br>부실 여신 예전보다 많아 금융사들 보수적 운영선회



서울 마포구에서 무역업을 하는 중소기업체 사장 A씨는 최근 거래은행에서 수차례 전화를 받았다. "연말에 지점 연체율을 일정 수준 아래로 맞춰야 하니 이자만이라도 빨리 내달라"는 것이었다. A씨는 내년 중 새로 돈이 들어올 데가 있다면서 추가 대출을 요청했지만 이마저 거절당했다. 금융회사들이 연체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12월로 회계연도가 끝나는 은행들은 부실채권을 줄이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고 카드사나 저축은행 같은 비은행권은 늘어나는 대출연체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출심사는 자연스럽게 한층 까다로워지고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중소기업과 개인의 어려움만 더 커지는 양상이다. 7일 금융계에 따르면 국민ㆍ우리ㆍ신한ㆍ하나ㆍ기업 등 주요 은행들은 연말까지 금융감독원이 제시한 부실채권 비율목표를 맞추기 위한 사실상의 총력전에 들어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우리은행으로 지난 9월 말 기준 부실채권 비율이 무려 2.25%, 금액으로 따지면 4조원에 달한다. 우리은행은 연말까지 부실채권 비율을 1.95% 수준으로 내릴 예정이며 이를 위해 부실채권의 대규모 상각을 검토하고 있다. 금감원은 당초 부실채권 비율을 1.5% 정도로 맞추라고 했지만 워크아웃 여신 등이 많아 목표달성은 도무지 어려울 것 같다. 은행 고위관계자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업체에 나간 대출을 부실채권 비율로 환산하면 1.3~1.4% 수준"이라며 "대출에 대한 권리는 우리가 갖지만 모두 손실 처리해 충당금을 쌓는 상각 작업을 통해 부실채권 비율을 낮출 생각"이라고 전했다. 금융권은 특히 연말이 되면서 대기업들이 갑작스럽게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나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부실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 당장 최근 워크아웃을 신청한 고려개발만 해도 은행권 대출이 4,300억원 수준에 이른다. 고려개발의 2대 채권자인 국민은행의 경우 현재 1.8~1.9%인 부실채권 비율을 연말까지 1.5% 수준으로 낮출 예정이지만 고려개발 등이 돌연 악재로 터지면서 비상이 걸렸다. 금융회사들은 3~4년 주기로 '부실과의 전쟁'을 벌인다. 경기의 굴곡과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 부실 여신이 연말이 돼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으면 결국 금융감독 당국이 직접 칼을 빼 든다. 올해도 같은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이례적으로 올해는 부실 여신이 많다. 이번에는 은행뿐만 아니라 신용카드와 저축은행 등 다른 금융권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생기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상황은 더하다고 볼 수 있다. 금융회사들의 관리 양태도 한층 보수적이 됐다. 당하는 것은 기업들. 금융회사가 부실을 줄이려면 상대적으로 기업 여신을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희비 엇갈리는 은행권=은행들이 부실 관리에 애를 먹고 있지만 희비는 엇갈리고 있다. 우리은행과 KB의 경우 악조건에 놓여져 있는데 특히 우리은행은 연말 여신 관리에 비상이 걸려 있다. 여신에 상대적으로 호의적이었던 우리은행이 최근 보수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이유다. 반면 신한과 하나은행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일부 변수가 있어 부실채권을 줄이는 작업에 신경을 쓰고 있다. 금감원은 신한에 부실채권 비율을 1.28%로 하라고 한 상황이다. 현재 신한의 부실채권 비율은 1.3% 안팎으로 기준치를 약간 웃돈다. 신한은행의 고위관계자는 "고려개발 등 변수가 있어 연말까지 부실채권 비율을 맞출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1.2% 수준인 부실채권 비율을 연말까지 더 낮출 방침이다.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하나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은 1.15%(1조4,000억원)로 현재 다소 높아져 있는 상태다. ◇카드ㆍ저축은행도 부실 위험 지대에=카드사 및 저축은행들도 부실채권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6월 말 1.74%였던 카드사의 연체율은 9월 말 1.91%로 뛰었다. 카드론 등 카드채권의 경우 같은 기간 1.5%에서 1.65%로 0.15%포인트 올랐다. 아직 2008년(3.02%)이나 2009년(1.86%)보다는 낮은 수준이라고 하지만 가계부채와 맞물려 언제 부실이 터질지 모른다. 전업계 카드사의 관계자는 "카드 쪽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많아 부실채권은 빨리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일부 부실 자산은 적극적으로 정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혹독한 경영진단을 거친 저축은행은 계속되는 건설경기 침체 등으로 늘어나는 부실채권 비율이 두자릿수까지 올라간 상태다. 업계 1위인 솔로몬저축은행은 9월 말 기준 부실채권 비율이 13.2%에 달한다. 금액으로는 4,346억원이다.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은 9월 말 현재 부실채권 비율이 무려 18.4%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들은 대출회수 및 상각ㆍ매각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괴로운 기업들…경기 악화에 금융사 돈줄 죄기까지=금융회사들의 부실 관리에 괴로운 것은 기업들이다. 경기도 불황 국면인데 돈줄까지 마르고 있는 탓이다. 금융사 입장에서 부실채권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미 부실이 난 것은 상각하거나 팔아치우고 부실이 생길 수 있는 대출은 최대한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9월 있었던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전후로 해 저축은행들이 대출회수 및 추심강도가 세졌다"고 밝혔다. 저축은행들은 최근 개인신용대출을 크게 늘린 바 있어 이에 대한 사후 관리작업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금융사들이 부실채권과의 전쟁을 벌이는 것은 그만큼 내년도 경기가 예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고위관계자는 "내년 경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가급적 올해 최대한 부실을 줄일 필요가 있다"며 "부실 비율이 높은 우리은행은 내년 중 하이닉스 매각차익이 생기면 추가로 대규모 상각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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