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아베노믹스 1년] 성장·물가지표 좋아졌지만… 구조개혁 부진에 동력 잃어

간판기업 실적 대폭 호전 등 대대적 돈 풀기 효과 불구 임금은 안올라 소비 둔화<br>고용규제 완화 등 미흡 성장전략 한계 드러내



2012년 11월14일, 당시 일본 집권당이던 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의회에서 열린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와의 당수토론에서 이틀 뒤 중의원을 해산하겠다고 돌연 선언했다. 자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차기 총리로 유력한 아베 총재는 이튿날 경제인들과의 회동에서 "정권을 잡으면 일본은행과 협조해 과감한 금융완화정책을 펴겠다"며 "2~3%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제한 완화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차기 총리로 확실시되는 아베가 대대적인 돈 풀기를 예고하면서 엔화가치는 단숨에 급락세로 돌아서고 주가는 무섭게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예고가 불러일으킨 이른바 '아베 트레이드'의 시작이다.

그로부터 1년. 일본 경제를 당장 회생시킬 듯한 기세를 보이던 아베노믹스는 초반의 동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공격적인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성장전략 등 '세 개의 화살'을 쏘아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겠다는 정책 방향을 천명한 이래 아베 정권은 숨가쁘게 정책들을 쏟아냈다. 4월 일본은행의 대규모 양적완화 발표에 이어 경제구조 개혁을 위한 성장전략과 소비세 인상안을 속속 내놓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시장에서는 화려한 포장에 가려진 아베노믹스의 '알맹이'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외신에서는 아베노믹스 '한계론'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물론 1년 전과 비교하면 일본 경제는 사뭇 달라졌다. 달러당 80엔 안팎에 머물던 엔ㆍ달러 환율은 100엔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올라섰고(엔화가치 하락), 주가지수는 70% 가까이 치솟았다.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0.75%에서 0.6% 밑으로 떨어졌다.

실물경제지표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 신선식품을 제외한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9월 0.7%에 달해 4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아베 정권은 2년 내 물가상승률 2%를 달성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겠다는 목표에 한 발 더 다가선 것처럼 보인다. 지난해 3ㆍ4분기 연율 기준 -3.5%에 그쳤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 1ㆍ4분기와 2ㆍ4분기에 각각 4.1%, 3.8%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지난해 9월 4.3%에서 올해 같은 달 4.0%로 떨어졌고 엔저효과로 도요타 등 일부 간판기업들의 실적 역시 크게 호전됐다.


전례 없는 돈 풀기를 통한 엔저 유도와 경기부양, 17년 만의 소비세율 인상 등 일본 경제의 명운을 담보로 하는 대형 '실험'에 가까운 아베노믹스는 그러나 1년 만에 빛바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엔화 약세가 실현되면 일본 수출이 호전되면서 경제를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올 상반기 일본 무역적자는 사상 최대 규모로 불어났다. 9월 무역수지는 8,748억엔의 적자를 기록해 15개월 연속 적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엔저로 인한 수출 증대효과를 에너지 수입 급증 부담이 압도한 탓이다. CPI 역시 에너지와 식품가격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플러스로 돌아서지 못하고 있다.

관련기사



기업 실적개선→임금 상승→소비지출 증대→물가 회복→디플레이션 탈출로 이어지는 아베노믹스의 선순환 흐름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선순환의 물꼬를 터야 할 임금 인상이 실현되지 않고 있는 탓이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9월 시간외 임금과 보너스를 제외한 일본 기업 평균 임금은 전년 동기 대비 0.3% 하락, 16개월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베노믹스 시행 1년이 지나도록 소득이 늘지 않자 모처럼 지갑을 열었던 일본인들은 다시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초기 아베노믹스의 동력이 됐던 소비지출이 3ㆍ4분기에는 4분기 만에 가장 낮은 0.4%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각부가 최근 발표한 10월 소비자태도지수는 전월 대비 4.2포인트 하락한 41.2에 그쳐 2011년 3월 대지진 이래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14일 발표되는 일본의 3ㆍ4분기 GDP 성장률은 전 분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7%(연율 환산)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베노믹스에 폭발적으로 반응했던 금융시장의 열기도 진작에 한풀 꺾인 상태다. 한때 과도한 약세가 우려됐던 엔화가치는 달러당 100엔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채 98~99엔선에서 수개월째 주춤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980년대 말을 연상시키던 증시 급등은 11월15일 이후 반년 만에 끝났다며 대다수 기업의 실적호전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일본은행의 양적완화만 기다리는 분위기가 증시에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경제를 되살릴 '극약처방'으로 국제사회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이 이처럼 1년도 안 돼 한계를 드러내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경제회생의 핵심인 구조개혁, 즉 아베노믹스의 세번째 화살인 성장전략의 부진을 꼽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시장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에 대해 평균 64점이라는 팍팍한 점수를 매겼다. 금융완화와 재정정책이 각각 78점과 71점을 받은 반면 성장전략은 44점으로 '낙제' 수준이다. 전략특구 설립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등 성장을 위한 구상 발표는 이어지고 있지만 법인세 인하와 고용규제 완화 등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쿠보 다쿠지 재팬마르코어드바이저 이코노미스트는 무역자유화와 법인세 인하정책 등의 속도와 규모가 기대에 못 미친다며 "성장전략 부진이 이어질 경우 내년 봄에는 경기가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앤드루 설리번 김응증권 아시아트레이딩부문 대표는 "아베노믹스가 실질적으로 1주년을 맞는 동안 우리가 본 것이라곤 소비세율 인상 결정뿐"이라며 "투자자들은 (아베 총리가) 경제정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경립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