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십자각] 5대재벌 전성시대

崔性範정경부차장IMF 이후 국내에서 상당한 공감을 얻었던 「세계화의 덫」이라는 책에서 저자들은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라 세계는 이른바 「20대 80」의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상위 20%의 사람들이 부를 사실상 독점하고 나머지 80%의 사람들은 간신히 입에 풀칠만 하는 수준이 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예견이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WINNER-TAKE-IT-ALL) 사회라고나 할까. 한국에서는 재벌개혁이 한창 진행중이다. 아직 반도체 등 일부 빅딜이 삐그덕거리긴 하지만 큰 흐름은 정해졌다. 그러나 소리가 요란했던 재벌개혁에서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바로 5대 재벌이다. 하나씩 짚어보자.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시절 꾹꾹 눌려 있던 현대는 눌려있던 반동으로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는 모습이다. 금강산사업이라는 역사적 프로젝트에서 남북한 정부 양쪽으로부터 독점권을 인정받았고, 기아자동차를 거머쥐는 엄청난 성과를 이룩했다. 게다가 LG반도체를 손에 쥐게 돼 세계적인 반도체회사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리딩뱅크인 조흥은행에 대해선 최소한 대주주의 자격을 확보했다. 형제들끼리 분가를 했다고는 하나 정주영(鄭周永)일가의 영향력은 1년여 전에 비해 2~3배 늘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의 경우 필생의 사업 자동차사업에서 분루를 삼키고 물러나야 하지만 크게 보면 자동차라는 큰 짐을 덜게 돼 오히려 몸이 가벼워졌다. LG의 경우 주력인 전자를 영위하는 데 전략적으로 필요한 반도체를 포기해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됐다. SK그룹은 쌍용정유를 손에 넣게 돼 정유업에 관한 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했다. 대우도 쌍용자동차와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는 성과를 올렸다. 금융분야를 보면 이같은 추세가 더욱 두드러진다. 증권분야의 경우 후발주자였던 현대와 삼성의 선두각축전 속에 다른 증권사들은 공포에 질려있는 상황이다. 보험산업 구조조정의 와중에서 5대재벌들은 진입장벽이 높았던 생명보험사업에 공짜로 티켓을 얻게 되며, 이는 대형금고를 하나씩 갖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조업에 이어 이제 금융업도 5대재벌의 판이 될 것임은 불문가지. 물론 이들 5대 재벌들은 올 연말까지 부채비율 200%를 맞추는 과정에서 많은 사업을 포기했고 일부 계열사가 강제퇴출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아픔(?)은 외부의 강요가 없었더라도 어차피 재벌 스스로 했어야 할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5대재벌을 제외한 나머지 재벌들에 눈을 돌려보자. 발빠른 구조조정에 성공한 한화와, 현금력이 풍부한 롯데 등 3~4개 그룹을 제외하곤 6대에서 30대 재벌 가운데 몸 성히 남아있는 재벌은 눈을 씻어도 찾기 어렵다. 간신히 명맥이나 유지하고 있을뿐이다. 6~30대 재벌은 사실상 해체된 셈이다. 당초 재벌개혁이 시작될 때만 해도 집중적인 타깃으로 여겨졌던 5대 재벌이 이제 와서 보면 최후의 승자로 남아 있는 셈이다. 「대마불사」의 신화가 사라진다고 했지만 알고보니 신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것도 추격하는 상대방도 없어진 상태에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래도 5대재벌이 경쟁력이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재벌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인가. 대한민국의 5대재벌은 시장주의자들의 논리만 궁색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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