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토요 문화산책]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칸영화제로 가게 됐다 는 소식이 연일 대서특필됐다. 한국영화의 개가라고 뿌듯해하는 이야기를전해 들으며 문득 최근 이혼을 선언한 어느 개그우먼 생각에 마음이 신산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라는데 정작 현실에서 여자는 남자의 동네북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한다지만 사람들은 얼굴과 이름을 제일로 여기는 여자 연예인이 그런 결정을 내릴 정도면 여염 여성들은 오죽했겠는가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를 가정 내 폭력을 보여주는 흔하고 뻔한 또 하나의 사례로 치부 해서는 안될 듯하다. 많은 이들이 말하듯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확대되고또한 실제로 가장이 되면서 남자들이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남자들이 이런 왜소해진 지위를 인정하기 힘들어하고 그에 따른심리적 반동으로 여자에게 손찌검을 하게 됐을 것이라고 풀이한다. 일리가 없지 않다. 이미 많은 가족의 경제적 재생산 형태가 남성 가장의 임금소득에 의존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벌어다준 돈으로 살림하는 여자’라는 공 식은 현실에서는 사라졌는데 남자들의 뇌리에는 아직 깊이 남아 있는지 모 른다. 최근 높아지는 이혼율에 제동을 거는 방편으로 정부는 이혼 부부들이 의무 적으로 상담을 받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어떤 이는 처음부터 소통하며 지내는 연습을 시킨 후 결혼할 자격을 주는 결혼인증제를 도입하자고까 지 제안한다. 손쉽게 이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적어도 이혼이 불평등하 고 폭력적인 관계를 거부하는 방편인 한 그것은 결혼을 좀더 민주화하는 장치가 된다. 그렇지만 이혼을 선택할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서 결혼이 민주화되는 것은아니다. 자신의 뇌리에 박힌 기억에 매달린 채 달리 살자는 요구가 곧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라 여기는 한 결혼은 다시 폭력에 말려들 것이다. 여성의 지위 향상은 남자의 지위를 빼앗는 것이 아니다. 평등을 요구하는주장을 이렇게 곡해하는 것은 결혼뿐만이 아니다. 최근 의회로 진출한 민주노동당의 평등 요구를 부유층의 재산을 뺏는 짓이라 규탄하는 사람들이있다. 이처럼 우리는 평등의 에토스에 무감각하다. 상생이라는 말이 인플레를 일으키는데 정작 평등의 상생은 안 보인다. 왜일까. <저작권자ⓒ 한국i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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