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입 다문 애널리스트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항소심 공판이 열린 지난 12일.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실형을 선고한 이번 판결이 CJ그룹의 주가에 미칠 영향을 알아보고자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여러 명의 애널리스트에게 연락을 돌리던 중 삼성증권 담당 연구원에게서는 다소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제가 삼성증권에 다니는데 CJ그룹 주가전망에 대해 코멘트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전 못합니다."


기업 종목을 분석하고 투자의견을 내놓는 게 직업인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자신이 맡은 기업의 주가전망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게 무슨 뜻일까. 아마도 그의 답변을 한 꺼풀 들춰보자면 이러한 속내가 깔려 있을 것이다. 지난 수년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선대 회장으로부터 받은 상속 재산을 놓고 이재현 회장의 선친인 이맹희씨와 소송을 벌인 상황에서 삼성증권 애널리스트가 이재현 회장의 실형 판결이 앞으로 CJ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논하기가 부담스럽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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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감정적으로만 놓고 보자면 그의 답변을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투자자에게 정확한 기업정보와 그에 기반한 투자의견을 전달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애널리스트의 본업을 떠올린다면 직무유기와도 다름없는 발언이다. 삼성증권을 이용하는 고객 가운데는 CJ그룹 관련 주식에 투자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투명성과 독립성이 생명이어야 할 애널리스트가 자신이 속한 회사와 얽힌 이해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일반 투자자들은 과연 누구를 믿고 투자해야 한다는 말인가.

본지는 지난 13일자 '증권사 리포트는 웁니다'라는 기사를 통해 부실한 리포트를 쏟아내며 위상이 추락한 애널리스트의 현실을 보도했다. 기사가 나간 뒤 요즘 정말 믿고 투자할 만한 리포트가 없다는 투자자들의 반응이 많았다.

애널리스트가 특정기업의 주가전망에 대해 소신껏 말하지 못한다면 증권사 리포트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애널리스트가 가장 무서워하고 눈치 봐야 할 것은 회사의 오너나 특별한 이해 관계가 아니라 자신을 믿고 따르는 수많은 투자자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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