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제2의 벤처 열풍' 99년 복사판?


정부가 벤처기업 활성화 등 경제회생을 위해 경제정책을 동원하자 지난 99년 5월 상황과 너무나 흡사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무분별한 벤처지원책이 일시적으로 각종 경기지표를 호전시킬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실물경제와 괴리된 또 다른 ‘버블 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도 장기적으로 꾸준한 이익을 내는 기업에 대한 신중한 투자가 요망된다. 정부는 올해 경제회생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벤처기업 활성화를 꼽고 있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해 말 “내년을 벤처 부활의 원년으로 삼겠다”며 “장맛비에 젖은 나무를 태우려면 불쏘시개로는 안되며 석유를 뿌려야 한다”고 벤처기업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예고한 바 있다. 우선 벤처대책을 내세운 배경이 99년과 매우 흡사하다. 정부는 소비심리가 4년 만에 최악으로 떨어지고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확대에 나서지 않아 일자리 창출에 어려움이 예상되자 벤처를 해결책으로 들고 나왔다. 99년에도 정부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70%대에 머무는 등 기업들의 설비투자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 연구개발과 벤처기업 창업을 통한 투자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5년여 만에 나온 벤처대책은 가히 복사판이다. 99년에는 벤처법인 설립자본금을 2,000만원으로 낮추고 교수ㆍ연구원의 벤처기업 임직원 겸직 등 각종 규제완화 정책을 베풀었다. 중소ㆍ벤처기업 육성자금 1,000억원을 창업투자회사를 통해 푸는 등 직접적인 자금지원도 잇따랐다. 지난해 말 발표한 ‘벤처기업 활성화 대책’ 역시 4년간 12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규제완화책을 내놓았다. 비리가 없는데 실패한 벤처기업에 신규보증을 해주기로 했다. 99년보다 지원규모와 규제완화의 정도가 더 커졌다. 정부가 강력한 벤처 육성 의지를 보이자 시장은 즉시 반응했다. 올해 코스닥 주가는 한달 동안 20% 이상 급등하며 99년 5월의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당시 코스닥 주가상승을 전자상거래 테마주들이 주도했다면 지금은 와이브로(휴대인터넷),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줄기세포 등이 대체하고 있다. 물론 99년에 비해 다른 점도 있다. 우선 지난 3~4년 동안 신경제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는 것이다. 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일어난 IT 붐은 신경제에 대한 맹신으로 이어졌으며 미국 나스닥지수는 급등했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기업이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며 캐시플로(현금흐름)를 관리하지 못하는 곳은 전통기업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인식이 정착돼 있다. 또 당시와 달리 IT 경기가 전반적으로 침체상태여서 미국 주식시장의 나스닥 주가는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별로 없다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당시에는 잇따른 벤처 투자 붐으로 ‘내수’와 ‘수출’의 양 날개가 경기회복을 이끌었다. 부동산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나 본격 회복기에 접어들 조짐을 보인데다 신용카드라는 대안이 있었다. 그러나 신용카드 남발로 잠시 살아난 경기는 무참히 깨졌고 부동산 버블은 여전히 우리 경제의 부담으로 남아 있다. 수출이 그나마 버티고 있지만 내수와의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미래의 혼란을 담보로 단기적인 부양’에 치우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벤처기업들에 대한 무분별한 보증규모 확대는 장기적으로 국가재정을 더욱 힘들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부실한 기업을 처리하기 위한 노력 없이 보증규모만 확대할 경우 당장은 좋아지겠지만 결국 경쟁력 없는 기업들이 살아남는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정화 한양대 교수는 “투명한 자금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벤처 육성은 또다시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정치적 의도로 밀려 자금공급만 늘릴 것이 아니라 투기세력을 감시하는 시스템도 강화해야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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