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수렁에 빠진 방통위

텔레비전, 케이블TV, 인터넷, 휴대폰. 이 네 가지는 신체의 일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엄청난 비중을 빗대 말한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같은 미디어는 사람의 혼을 쏙 빼는 ‘신기’(神器)와 같다. 대다수 국민이 기꺼이 많은 비용을 부담하면서 이런 미디어를 이용하는 까닭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여론을 접하며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빠지면 안 될 것이 있다. 방송ㆍ통신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공정성이다. 국민들은 자신의 생각과 선택에 영향을 주며 국정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송과 통신에 정치세력이 개입하거나 통제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다만 방송과 통신의 공익추구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규제기구를 뒀을 뿐이다. 그런데 이 기구는 권한이 막강하다. KBS 이사,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EBS 이사를 선임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공공자산인 주파수 관리도 해야 한다. 방송, 통신, 융합 미디어 등의 인ㆍ허가권도 가진다. 방송과 통신에 관련된 정책수립도 방통위 몫이다. 특히 공영방송 이사회까지 방통위가 구성한다. 이 점이 중요하다. 방송과 통신의 정책수립 및 공영방송의 경영진 구성을 책임지는 방통위는 조직상 독립성과 운영상 공정성이 확보돼야 한다. 그리고 전문성과 투명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권교체라는 과도기에 새로 제정된 방송통신위원회법은 방통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방통위는 직제상 대통령 직속이고 합의제 성격도 많이 잃었다. 일거수일투족이 청와대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런 바탕에서 부적절한 방송통신위원장이 내정된 것이다. 수십년이 걸린 방송민주화 성과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다. 이런 역사적 후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방통위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흉내를 냈다고는 하나 두 기구는 엄연히 다르다. 방통위가 대통령이 통제하는 기구라면 연방통신위원회는 무소속의 독립된 연방기구로 연방의회의 통제를 받고 연방의회에 책임을 진다. 연방통신위원회 홈페이지에 가면 “연방통신위원회는 연방의회에 직접 책임을 지는 독립된 미국 정부기구”(an independent US. government agency, directly responsible to Congress)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5명의 위원이 여야 각각 3명, 2명을 추천하면 형식상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 밖의 것은 대부분 연방의회의 통제를 받는다. 미국과 달리 한국의 방통위는 대통령을 위한 기구처럼 돼 있다. 대통령과 방통위원의 관계도 수직적이다. 대통령과 방통위를 법적으로 아무리 멀리 떼어놓아도 방통위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그래서 시민사회와 학계 일부에서는 방통위가 무소속의 독립된 국가기구라는 위상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방통법 때문에 다 틀렸다. 방통위와 방통위원을 대통령에 종속된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구가 방송과 통신을 규제한다면 독립성과 공정성이 있는지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 국민이 고개를 끄떡일 만한 방통위원장이 내정됐다면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그러지도 못 했다. 조직이든 사람이든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그만이다. 방통위와 방통위원장 내정자 모두 그런 모습이다. 결단이 필요한 시간이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참신한’ 방통위원과 위원장을 뽑아 방송ㆍ통신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사태의 근원인 방통법이 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방송통제위원회’로 전락시킨 방통법은 반드시 전면적으로 개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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