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3월15일] 바잘게트 & 분류 하수관 권홍우 편집위원 ‘숨쉴 수도, 견딜 수도 없는 지옥의 웅덩이.’ 영국 총리를 지낸 정치가이며 문필가 디즈레일리가 템스강을 두고 한 말이다. 18세기 초까지 생활용수로 활용되던 강물은 19세기 들어 오물의 늪으로 변해갔다. 도시인구 급증 탓이다. 1801년 86만5,000명에서 1860년 300만명으로 늘어난 인구가 쏟아낸 오물로 더럽혀진 강물은 1832년부터 콜레라를 퍼뜨리며 1848년에는 한해 동안 1만4,13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통계에 잡히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5만 여명이 사망했다는 추정도 있다. 의정활동이 마비될 정도로 심한 악취까지 풍기던 강물은 1860년대 말부터 깨끗해졌다. 조지프 바잘게트(Josept Bazalgett ) 덕분이다. 해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나 철도건설 기술자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템스강의 오염을 해결할 대책으로 ‘분류 하수관로’ 건설을 제의, 1856년부터 공사 책임을 맡았다. 강변에 석축을 쌓고 석축 내부에 벽돌로 된 하수로를 통해 바다로 흘려보내는 바잘게트의 720㎞짜리 하수도는 놀라운 성과를 가져왔다. 강을 오르내리는 선원들은 더 이상 두통과 구역질에 시달리지 않게 됐다. 전체 구간이 완성된 1874년에는 악취에서도 벗어났다. 템스강을 살린 공로로 1875년 기사 작위까지 받은 바잘게트는 1891년 3월15일 72세로 사망했지만 그가 건설한 하수도망은 ‘천재 토목기사 브루넬 부자(父子)’가 뚫는 런던 지하철과 함께 오늘날까지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 바잘게트와 브루넬 부자의 공통점은 프랑스계.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영국에 정착한 프랑스 신교도(위그노)의 후손이다. 코드에 집착하지 않고 인재를 고루 등용했다면 19세기 이후 토목공학의 주도권은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가 행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