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자의 눈] 한국은행의 '바담 풍'

권홍우 정경부기자자신은 「바담 풍(風)」하면서 학생들에겐 「바람 풍」을 요구하는 선생은 일단 자격이 없다. 더욱이 자기 피붙이의 「바담 풍」에는 눈감고 남의 잘못된 발음만 트집잡는다면 문제가 조금 심각해진다. 한국은행은 지난 주초 「화폐의 존엄성」을 적극 방어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화폐와 유사한 상품권을 만들거나 화폐 도안을 광고에 이용하는 행위에 대해 강력 대처하겠다는 게 골자다. 지금까지는 돈을 소재로 하는 광고를 제작하는 업자나 광고대행사에게 구두경고만 해 왔지만 앞으로는 형사고발도 불사할 방침이라고 서슬이 퍼랬다. 「돈으로 꼬아진 새끼줄 사이에 만원권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광고, 돈을 아무렇게나 움켜진 광고」 등도 고발대상에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돈을 함부로 희화화(戱畵化)하지 말라는 경고다. 중앙은행 입장에서 화폐의 존엄성 수호는 당연하다. 되레 때 늦은 감도 든다. 그런데 일에는 순서와 원칙이 있다. 얼마전부터 소공동 한은본관 1층 로비에 붙은 노조 대자보에는 커다랗게 확대된 1만원권 지폐가 그려져 있다. 이 지폐에는 한은총재 직인이 없고 대신 재정경제부장관의 직인이 찍혀 있다. 예산권 등 중앙은행 고유영역을 침범하는 재경부와 이에 맞서지 못한 한은 집행부, 금융통화위원회를 싸잡아 비판하는 소재로 뒤틀린 지폐가 채택된 것이다. 노조 주장에는 공감이 가는 대목도 많다. 오죽하면 한국은행권 발행 주체로 재경부를 지칭하는 극단적 희학(戱謔-실없는 농지거리)까지 등장했겠나. 하지만 명분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돈에 총재 직인을 없앤 것은 과연 「화폐 희화화」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지. 스스로 훼손한 한은권의 품위는 어디서 찾아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지 궁금하다. 한은 간부는 『노조란 의례 그런 것 아니냐』며 태연하다. 그렇지만 일반 국민들이 보기엔 노조든 집행부든 모두 똑같이 한은일 뿐이다. 한은 본관에 걸린 한은권 대자보를 보면서 문득 「바담 풍」선생을 떠올려야 하는 것도 너무나 한국적인 현실일까.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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