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그때그때 달라요

이규진 기자 <사회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수사 중인 검찰은 기회 있을 때마다 ‘국민적 의혹’을 이 기회에 말끔히 정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런 이유로 김 전 회장에게 출국을 권유한 정ㆍ관계 인사가 있는지, 있다면 누구인지를 집요하게 조사하고 있다. 지난 22일 대우그룹의 전 사장단이 정ㆍ관계 인사의 출국권유 정황을 담은 의견서를 검찰에 냈고 검찰은 이를 근거로 전 청와대 수석 등 5~6명을 소환할 태세다. 만약 이들이 출국을 권유한 게 사실이라면 범인도피죄를 지은 것이라는 게 검찰 측 설명이지만 처벌보다는 의혹 해소라는 역사적 명분이 더 커 보인다. 이러던 검찰이 ‘X파일’ 사건에서는 영 딴판이다. 김 전 회장의 출국권유건보다 훨씬 더 중대하고 심각한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도 “수사하기 힘들다”로 일관하고 있다. “불법으로 수집된 자료는 증거능력이 없고 이를 토대로 수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김종빈 검찰총장)” “도청한 걸 가지고 검찰이 수사하는 게 맞는 것인가. 시효도 지났는데(대검 관계자)“ 어찌 보면 검찰은 X파일 수사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 같다. 참여연대가 X파일 관련자 20여명을 고발해 수사 근거를 만들어줬지만 틈만 나면 검찰 기자단에 수사불가 법리를 나열하기 바쁘다. 26일 김종빈 총장이 출근길에 한 말 역시 그렇다. 전날 저녁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이번 사건은 거대권력이라고 볼 수 있는 정치권력ㆍ언론ㆍ자본 그리고 검찰 및 과거 안기부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며 “현재 검찰에 계류된 거대권력 관련 사건을 철저히 수사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김 총장의 반응은 “아직 듣지 못했다. 연락이 왔는지 확인해보겠다”가 전부였다. 국민들은 대선후보와 거대 기업, 거대 신문, 그리고 검찰이 추악한 뒷거래를 했다는 의혹의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어차피 X파일 내용이 만천하에 폭로된 이상 진상을 규명해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 비록 증거법이나 시효의 한계가 있더라도 적극적인 법 집행으로 범죄자들을 단죄하겠다는 검찰의 강력한 의지 천명이 아쉽다. 특히 공동체의 질서를 뒤흔드는 반역사적 범죄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아울러 검찰은 전현직 고위 간부들이 연루됐다는 의혹 때문에 제 식구를 감싸려고 수사에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삐딱한 소리를 듣지 않도록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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