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인터넷라이프/플라자] 인터넷 약관 '노골적 기업편들기'

담당자는 『정체 불명의 바이러스 침입으로 당분간 이용이 안된다』고 설명한다. 한 술 더 떠 『저장된 파일도 모두 삭제됐다』고 말한다. 거래처 주소록과 전화번호도 메일업체의 파일 공간에 모두 보관하고 있던 터라 P씨는 난감했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항의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우린 책임없다』며 『가입할 때 약관을 못봤느냐』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인다. P씨는 그제서야 가입할 때 깨알같은 글씨로 잠깐 보이던 약관을 떠올린다.약관은 이용자와 서비스 제공자 사이의 약속이다. 이용자는 약관이 맘에 들지 않으면 가입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이트들이 담합이라도 한 듯 자사 중심의 편파적인 약관을 채택하고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약관은 늘 서비스 제공자에게는 든든한 「방패」가 되고 소비자에게는 발등을 찍는 「도끼」가 된다. 「당사는 본 서비스의 유지·관리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 본 서비스는 공지 없이 폐쇄·정지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피해에 대해 온네트는 책임지지 않습니다.」(동호회 사이트 온네트) 「회사는 고객으로부터 취득한 신상 정보를 재화·용역의 추천 및 기타 마케팅활동에 활용할 수 있다.」(해피투바이,한솔 CSN) 무료 이메일을 제공하는 야후코리아의 약관은 아예 노골적이다. 「본 서비스 약관은 통지없이 수시로 갱신될 수 있다. 야후는 언제든지 수시로, 통지하거나 통지함 없이 서비스를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중단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야후는 어떠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야후는 어떤 이유로든 임의로 귀하의 계정 및 동 계정에 포함된 모든 관련 정보와 파일들을 즉시 삭제할 수 있습니다.」 딱딱하기 짝이 없는 이 문장들을 쉬운 말로 번역하면 이렇다. 「당신의 메일 계정은 사전통보 없이 언제든지 삭제할 수 있다. 물론 그 안에 담아둔 메일이나 중요한 파일들도 우리 맘대로 지워버릴 수 있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려는 노력은 하겠다. 서비스에 가입한 이상 다량의 광고 메일을 받을 각오를 하라.」 편파적인 약관 내용은 잠시만 살펴보면 금방 드러난다. 대부분의 사이트들이 고객들의 신상정보 변경은 「즉시 메일이나 전화로」 알리도록 하면서 약관의 변경은 「게시판 등 기타 편리한 방법」으로 하고 있다. 또 비밀번호 노출로 입을 피해는 「전적으로 고객 책임」인 반면, 고객의 신용카드 정보 유출로 생기는 피해는 단지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식으로 슬며시 넘어간다. 쇼핑몰 사이트들의 편파적인 약관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삼성몰은 개인정보의 유출책임을 회사가 아닌 운영자에게 지우고 있다. 인터파크는 변경된 약관이 사이트에 공시되는 순간부터 효력을 발휘한다고 규정, 소비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방문해야만 한다. 메타랜드는 당연히 발행해야 할 영수증을 고객이 요청할때만 발행하도록 규정하고 나중에 요청하면 발송비를 고객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는 등 업체들의 「제멋대로」식 약관은 여전하다. 물론 「약관 규제법」이라는 법령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부의 관리와 규제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듯 싶다. 가까운 예로 정보통신부가 관리하는 우체국 전자상거래 사이트 「이포스트(WWW.EPOST.GO.KR)」는 약관이라는 것이 아예 없다. 「약관은 기업 편」이라는 등식은 인터넷 서비스라고 예외가 아니다. 기업의 무책임 앞에 인터넷 서비스 소비자들의 권리는 외면당하기 일쑤다. 이진우기자MALLIA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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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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