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기술의 발달로 회복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병원에서 장기치료를 받다가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첨단 의료장비나 신약 투약 등으로 생명은 연장되지만 치료기간 동안 삶의 질과 함께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최근 '무의미한 연명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 초안'을 제시했다. 두 명 이상의 의사가 의학적으로 회생 불능 상태임을 확인하고 환자가 평소에 연명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서류를 작성해놓았다면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환자 본인의 의사 확인이 불가능할 경우 가족이 합의해 추정한 환자의 의사를 인정하고 가족이 없을 때는 병원 윤리위원회가 치료 여부를 대신 결정할 수 있게 했다.
우리 사회에서 연명치료 논란은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부터 시작됐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생명을 유지하던 환자를 가족의 요청에 따라 퇴원시킨 의사가 2004년 대법원에서 살인방조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어 2009년 5월 식물 상태였던 김모 할머니의 가족들이 병원을 상대로 낸 연명치료 중단소송에서 대법원이 '아무런 기준 없이 의사나 환자ㆍ본인ㆍ가족들의 판단에만 맡겨두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국가는 입법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해 법제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번 국가생명윤리심의위의 초안 제시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한 국회 입법까지는 수많은 논쟁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환자가 의식불명에 이르기 전에 사전치료의향서를 작성해놓았을 경우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는 것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 논란의 핵심은 의사표명이 불가능한 환자의 의사를 가족이나 대리인이 확인하고 이를 환자의 의사로 추정하는 것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다.
종교계 등의 반대논리는 국가가 이를 법제화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에 죽음의 문화를 조장하는 것이고 입법과정에서 아무리 합리적인 통제장치를 마련한다고 해도 경우에 따라 죽음에 임박하지 않은 환자의 생명을 임의적으로 단축하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의료비 부담이 과도한 현실에서 이를 허용할 경우 경제적 이유로 남용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2009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만성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말기환자들이 임종과정에서 인공호흡기를 적용한 경우는 16.5%에 불과했고 나머지 83.5%는 인공호흡기 적용을 중단하거나 유보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았다. 따라서 오남용을 막기 위해 오히려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대법원 판결로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첫 연명치료중단 당사자가 된 김모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떼어낸 뒤에도 예상과 달리 201일간 호흡을 더 이어가다 생을 마쳤다.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생명의 위대함에 모두 놀랐다. 연명치료중단 입법에 이르는 과정은 지난하겠지만 연명치료논쟁이 우리 사회에 생명존중사상이 더 깊게 뿌리내리기를 바란다.